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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만 보면 계절 변화 안다? ‘예산없다’ 관측 확 줄인 日기상청

중앙일보

입력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지난달 24일 벚꽃이 개화한 모습. [기상청 제공]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지난달 24일 벚꽃이 개화한 모습. [기상청 제공]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벚꽃 개화가 관측됐다.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의 왕벚나무 기준 목이 1922년 관측 이래 가장 이른 때 꽃을 피운 것이다.

이처럼 꽃의 개화나 제비의 출현처럼 '현상학적 기상 관측'은 계절의 변화나 기후변화를 관측하고 기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이 같은 현상학적 관측 네트워크는 다양한 종을 여러 사이트에서 오랫동안 관측해왔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관측 네트워크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 관측소들은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남북으로 넓은 위도 범위에 분포하기 때문에 외국보다 큰 온도 차이를 담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일본의 현상 관측 네트워크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화여대 공대 이상돈 교수(환경공학 전공) 교수와 일본 효고·게이오 대학, 미국 보스턴 대학 등의 연구진은 22일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 저널에 '일본 기상청의 현상학 관측의 축소'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日, 현상관측 항목 94% 줄여

섬휘파람새. 일본 기상청에서는 섬휘파람새의 출현을 관측했으나, 이번에 관측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 저널]

섬휘파람새. 일본 기상청에서는 섬휘파람새의 출현을 관측했으나, 이번에 관측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 저널]

일본 기상청(JMA)은 올해부터 계절 관측 등 현상 모니터링 수준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비판이 쏟아진다는 것이 기고문의 골자다.

일본 기상청은 1953년 이후 벚꽃 개화 시기와 철새 도래 시기, 개구리·곤충의 출현 시기 등 100개 이상의 현상을 전국 105개 관측소에서 관측해왔다.
연구자들은 이 데이터를 사용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종의 반응, 종의 분포 범위 변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도시지역에서는 일부 생물 종을 관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관련 예산 부족까지 겹치면서 올해부터 전국 58개 지점에서 식물과 관련된 6개 현상만 관측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곤충 등 동물 종은 기상관측소 구내가 아닌 외부에 별도의 관측지점을 마련하고 관찰해야 하므로 지속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기상청 계획대로 관측 규모를 축소하면 관측지점은 40% 줄고, 관찰하는 현상학적 이벤트는 94%가 줄게 된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모니터링 규모를 지나치게 축소한 것은 근시안적 처사"라고 비판하고 일본 기상청에 결정을 재고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연구진들은 기고문에서 "도심에서 동물 관찰이 어려우면 인근 외곽이나 공원으로 관찰지점을 바꿀 수도 있고, 예산 부족이 이유라면 자원 봉사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대안도 제시했다.

한국·유럽 안정적으로 운영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본과 달리 유럽이나 한국의 현상학 네트워크는 국가 기상 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정부 자금 지원을 받고 있어 대조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1921년 서울기상관측소를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 76개 지점에서 16종의 생물 등 총 20개 현상에 대해 관측을 진행하고 있다.

식물이 개나리·진달래·매화·벚꽃·단풍 등 10종이고, 조류는 제비·뻐꾹새 2종, 양서류는 참개구리 1종, 곤충은 매미·잠자리·배추흰나비 등 3종이 관측 대상이다.

이상돈 교수는 "식물 종은 꾸준히 관찰되고 자료가 관리되지만, 동물 종은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도심 개발 등의 다양한 변수로 인해 관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면서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앞으로도 동물 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내의 경우 식물 종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반면, 동물 종인 곤충과 조류는 봄철 활동 시기가 점점 늦게 나타나면서 영양 그룹(먹이사슬 단계)의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현상학적 모니터링을 통해 얻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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