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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독촉 전화만 하루 40통...카페사장은 아침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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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

2019년 12월 전북에서 회사를 그만둔 남편과 함께 카페를 차린 김모(39)씨. 김씨는 최근 오전 8시부터 저녁때까지 은행과 카드사, 대부업체에서 30~40통의 빚 독촉 전화를 받는 게 일상이 됐다. 그는 22일 "빚 독촉 전화를 받을 때마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통사정하며 버티고 있다"며 "최근엔 차까지 경매에 넘긴다고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빚의 수렁에 빠진 자영업자

김씨는 카페 문을 연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지난해 한 달 매출은 최저 14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매달 임대료나 전기세로 400만~500만원이 나간다. 매출로 운영비를 못 내다보니 부모나 친구 등 주위에 손을 벌리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거기에 더해 차량담보대출과 불법 일수까지 끌어다 썼다. 지난 1년 남짓 동안 1억원 가까운 빚이 쌓였고 전기료, 카드값, 차량 할부까지 모두 밀려있다.

코로나19가 1년 넘게 기승을 부리면서 빚의 늪으로 빠져드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자영업자 절반이 1인당 3억37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종로의 한 식당 모습. 이가람 기자

코로나19가 1년 넘게 기승을 부리면서 빚의 늪으로 빠져드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자영업자 절반이 1인당 3억37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종로의 한 식당 모습. 이가람 기자

"아침이면 눈 뜨기 싫어…소주 있어야 잠자리" 

김씨는 “하루 종일 빚 독촉 전화를 받다 보니 아침이면 눈뜨기가 싫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몇번이고 폐업 생각을 했지만 인테리어 철거비만 500만~600만원으로 만만치 않더라"며 "또 폐업하면 뭐로 먹고 사나 하는 생각에 버티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정부에서 지급하는 4차 재난지원금인 버팀목자금을 신청했지만 지난해 매출이 창업한 2019년보다 많다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하루 13시간씩 카페를 지키는 것 말고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매일 밤이면 소주 1병을 벗 삼아 잠자리에 든다"고 씁쓸해했다.

자영업자 절반이 1인당 빚만 3억3700만원  

자영업자 대출금액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자영업자 대출금액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이 점점 더 깊은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03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8조6000억원 늘었다. 2012년 이후 최고치다. 국내 자영업자는 총 542만명으로, 그중 절반에 가까운 238만명이 1인당 평균 3억3760만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지난해 자영업자의 매출은 전년보다 매 분기(2~6%씩) 줄었고, 그에 따라 대출은 증가했다(10~17%씩). 매출은 줄고 빚은 늘다 보니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지난해 초 195.9%→연말 238.7%).

실제로 자영업자 10명 중 9명은 코로나 19 이후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20여개 자영업자 단체로 구성된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2월 20일부터 한 달간 자영업자 15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지난 1년간 부채는 5132만원이 늘었고, 종업원도 4명에서 2.1명으로 줄였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가량(44.6%)이 폐업을 고려 중이었다. 통계청 3월 고용 동향에서도 지난달 고용원(직원) 없는 자영업자가 415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3000명이 늘었고,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30만4000명으로 같은 기간 9만4000명 줄었다.

영업시간 줄여 장사 더 안되는 악순환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줄고 빚은 쌓이자 운영비를 아껴보려고 영업시간을 줄이다 보니 장사가 더 안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에서 30평짜리 프랜차이즈 빵집을 하던 김모(48)씨는 요즘 오전엔 배달 알바를 하고 있다. 손님이 적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반까지 음식 배달로 6만~7만원 정도를 벌고, 오후부터 저녁 11시까지는 빵집을 지킨다. 김씨는 "330만원씩인 월세 1년 치가 밀려 있다"며 "장사를 접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지금 문을 닫으면 권리금 3000만~4000만원도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전기료라도 벌어보려고 알바를 시작했는데 요즘은 내가 배달원인지 빵집 주인인지도 모르겠고 마음도 자꾸 소심해지고 피폐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일회성 지원보다 폐업·기술훈련 지원해야" 

김씨 같은 자영업자들은 버거운 임대료와 공과금 감면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또 대출 문턱을 낮춰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카페 주인 김씨는 “임대료 등 정기적으로 나가는 비용만 조금 깎아줘도 살 것 같다"며 “특히 임대료는 3개월만 미납돼도 쫓겨날 수 있다"고 했다. 빵집 주인 김씨는 "대출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대출 조건을 좀 낮춰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 부채가 많기도 하지만 특히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게 문제"라며 "다중채무자(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사람) 중에서도 자영업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난지원금처럼 일회성 지원으로는 개선이 안 되고 경제가 좋아져도 자영업자 빚이 갑자기 줄지는 않을 것"이라며 "폐업 지원이나 재취업 교육, 기술 훈련처럼 큰 그림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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