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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코인섬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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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 기자

김현예 P팀 기자

혹시 이런 경험 한 번 해본 적이 있는지. 눈을 감았는데 번쩍하고 섬광이 보이는 그런 순간 말이다. 요상하지 않은가. 눈을 감으면 캄캄해야 하는데, 웬 밝은 빛이 보이느냔 말이다. 이 증상을 광시증(光視症), 혹은 눈섬광(phosphene)이라고 부른다.

광시증은 안구를 누르는 것처럼 망막에 물리적인 자극이 생기면 발생하는데, 순간 나타났다 사라진다. 더러 눈 주위를 부딪쳤을 때 별이 보이는 것도 이같은 원리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과로와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요즘 가상화폐 ‘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미국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에 이어, 사무실 공유업체인 위워크가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열풍이 몰아치자 한 코인은 상장 30분 만에 값이 1000배 넘게 뛰었다. 뿐만이 아니다. 어느 직장인이 코인 투자로 400억원 넘게 벌어 회사에 사표를 냈다더라, 어느 젊은 직원은 수십억 원을 벌고 조기 은퇴한 ‘파이어(FIRE)족’이 됐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국내 코인 시장의 큰손은 청년이다. 지난해 자고 일어나면 올랐다고 할 정도로 급등한 부동산 시장에서 ‘영혼을 끌어모아’ 후발 투자를 했던 20·30세대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빗썸과 업비트·코빗·코인원 등 국내 4대 가상자산 취급업소 기준, 올 1~3월 전체 이용자 511만 4003명 가운데 20대(21%)와 30대(24%)가 대세를 이뤘다. 같은 기간 이들의 예치금 규모 역시 전체 6조4863억원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3조1819억원에 달했다. 거래 횟수도 압도적이다. 전체 19억3025만회 거래 가운데 20대가 2억5081만회를, 30대는 4억8632만회에 달하는 거래를 했다.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코인값이 매일매일 우상향만 유지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난 13일 8000만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은 최근 7000만원 선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이들이 변화무쌍 코인에 귀를 기울이는 데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은 판국에 열심히 일해 한 푼 두 푼 모은 월급만으론 집을 사기 어렵고, 부모 세대만큼의 부(富)를 이루기 힘들 거란 캄캄한 현실이 그것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청년들에게 코인이 섬광처럼 보이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김현예 P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