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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기소, 눈치 볼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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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했지만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검사들의 수장인 검찰총장은 여전히 막강한 자리다. 누구를 임명하느냐는 대통령이 가진 핵심 인사권이다.

피의자 이성윤, 검찰총장 후보 거론 #수사팀 기소 의견, 대검은 결정 미뤄 #증거 충분하면 기소하는 게 옳은 길

지난달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표가 수리됐고 지난달 11일 후임을 정하기 위한 후보 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번엔 (후임 인선을) 전광석화처럼 속도감 있게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0일이 넘도록 후보 추천위 개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전광석화가 아니라 거북이걸음이다. 2013년 중도 사퇴한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후임을 정하기 위한 추천위는 구성부터 후보 추천까지 17일이 걸렸다.

검찰청법과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 운영규정을 살펴보면 추천위의 성격은 ‘검찰총장 후보 적격성 평가위원회’에 가깝다. 추천위원의 임무는 법무부 장관이 제시한 심사 대상자를 평가해 적격 여부를 가려 3명 이상 추천하는 것이다. 여기서 심사 대상자를 정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라는 게 중요하다. 추천위원이 처음부터 심사 대상자를 추려 추천 후보를 정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법무부 장관은 추천을 존중할 뿐, 반드시 따를 필요도 없다. 법무부 장관도 대통령이 임명할 사람을 제청하는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후보 추천위라는 것은 요식 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추천위가 열리지 못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인물이 추천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핵심 인물은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이 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과 관련해 수원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소문 포럼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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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검장은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수사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이 지검장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자신 관련 수사는 공수처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로 공수처를 방문해 김 처장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 ‘황제 조사’ 논란이 일었다. 소환 통보에 계속 불응하던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의 기소 방침 소속이 전해지자 자진 출석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기 직무와 관련해 수사를 받는 피의자, 그것도 곧 기소돼 피고인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을 검찰총장 후보로 추천한다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일이 어디 상식으로만 돌아가나.

수원지검은 이 지검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대검 핵심부도 여기에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았다. 최종 결정은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의 몫이다. 그는 친정부 검사로 분류됐지만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 국면에선 추 전 장관을 따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차기 총장 경쟁에서 멀어졌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여전히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대검 내부엔 후임 총장 인선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이 지검장을 기소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당일 검찰이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한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검찰은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아 기소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여권에선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노골적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사실상 기소 방침을 정하고도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의식해 기소를 늦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이 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청문회를 앞둔 총장 후보자를 기소하는 것은 더 큰 논란이 될 수 있다.

조 대행은 이 지검장 기소 문제를 놓고 더 이상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조 대행은 20일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을 찾아 신임 부장검사들에게 “‘전장에 있어 장수의 의리는 충성에 있고 그 충성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검찰의 의리는 정의에 있다”고 말했다. 확보한 증거에 따라 지체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게 백성에 충성하는 검사의 자세다. 조 대행은 지금 백성을 향하고 있나, 아니면 임금을 보고 있나.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