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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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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정치권에서 핵심 참모를 복심(腹心)이라 부른다. 사전적 의미로 ‘마음속에 품은 말이나 심정’ 혹은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일본의 고전 전문가 모리야 히로시가 해설한 『제갈공명 병법서』에 따르면, 장수에게 꼭 필요한 부하는 ‘복심·이목(耳目)·조아(爪牙)’ 등 세 부류다. 마음 놓고 부리는 사람(복심)과 눈과 귀가 돼주는 사람(이목), 손톱과 어금니처럼 쓸모있는 사람(조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심이 꽤 점잖은 표현이라면 속어로는 일본말에서 유래한 꼬붕(子分)이란 표현이 있다. 똘마니와 비슷한 의미로 아랫사람을 경멸스럽게 낮춰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본래는 ‘부하’나 ‘수양아들’을 뜻하는 말이다. 마피아·삼합회와 더불어 세계 3대 조직폭력단으로 꼽히는 일본의 야쿠자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말로 더 유명하다. 두목인 오야붕(親分) 밑에 있는 조직원들을 꼬붕이라고 한다.

일본 영화 ‘아웃레이지(2010)’는 야쿠자의 삶을 리얼함과 코믹함으로 버무렸다. ‘하나비(1998)’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계의 거장인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 속 야쿠자는 오야붕이건 꼬붕이건, 하나같이 비열하다. 배신과 야합만 일삼을 뿐 의리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종종 미화되는 야쿠자의 허상을 꼬집는 듯하다.

정치인들이 이런 야쿠자를 닮고 싶었을까. 최근 정치권에서는 때아닌 ‘꼬붕 논쟁’이 펼쳐졌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판해 온 장제원 의원을 “홍준표의 꼬붕”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장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야말로 노태우 꼬붕”이라 응수했다. 김 전 위원장이 노 전 대통령 시절 경제수석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걸 두고서다.

꼬붕이란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짐작은 간다. 멸시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복심 같은 점잖은 표현은 거친 감정을 전달하기에 너무 밋밋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굳이 야쿠자들이 주로 쓰는 속어를 써가며 언쟁을 펼쳐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양측의 주장대로 라면 꼬붕끼리 화끈한 언쟁을 벌인 셈인데, 이걸 보는 국민들의 얼굴도 화끈거린다.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