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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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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더불어민주당을 출입하다 보면 “라떼는 말이야”보다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몰라서 그래”다.

지난 4·7 재·보선 국면에서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 오세훈(서울시장)·박형준(부산시장) 후보를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라고 공격했다. MB에 대해 환멸을 느꼈던 무당층에서도 “차라리 이명박 때가 나았다”는 말이 들리는 마당에 민주당에 유리한 프레임일지 궁금해 물었다. 친문성향 의원에게선 “MB 정부 때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서 그래”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뒤 MB 정부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았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혹독한 사찰을 당했는지 설파했다.

참혹한 패배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민주당에 깃든 패배의 기운이 “조국 사태에서 시작됐다”고 말하지만 민주당에선 “끝난 일”(윤호중 원내대표)이란 감정 섞인 반응이 다수다. 사태를 곱씹어 보자는 의원들에겐 어김없이 문자폭탄이 쏟아졌다. “공정이라는 역린을 건드렸다”는 반성론에도 “(조국은) 별건 수사의 피해자”(호남 초선 의원)라는 억울함이 남아 있다.

왜 패인을 극복하려 들지 않는지 궁금해 비문 재선 의원에게 던진 질문의 답도 “몰라서 그래”였다. 2015년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가 당 혁신위에 뛰어들어 문재인 당 대표를 어떻게 지켜냈는지, 그 뒤 친문 진영의 이론가로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기자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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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18 역사왜곡처벌법’ 강행처리 직전 핵심 당직을 맡은 의원과의 문답은 이랬다.

“담론 공간에서 자정능력을 보이지 않을까요. 역사에 대한 평가를 굳이 형사처벌해야 합니까.”

“몰라서 그래요. 5·18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 얼마나 보수파들의 근거 없는 폄훼가 심각한지.”

“몰라서 그래” 다음엔 “라떼는 말이야”가 이어졌다. 1980년대 초반 대학 초년 시절 공안 경찰의 눈을 피해 5·18의 진실을 몰래 공유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등등.

“몰라서 그래”에 치이다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40대 민주당 출입 기자도 몰라서 공감할 수 없는 정서와 노선으로 2030과 중도층의 표를 얻을 비장의 무기는 무엇일까. “몰라서 그래”에선 민주당 인사들이 총체적 공감 능력의 부재를 드러내는데 얼마나 거리낌이 없는지가 느껴진다. 이를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 정의감이라거나 우리끼리 일체감에 자족하는 운동권 동아리 정서, 여전히 다수·주류인 50대 후반 86그룹의 폐쇄적 동질감 등으로 지적하는 건 다음 문제다. “몰라서 그래”를 반복하는 그만큼 정권 재창출로부터 멀어질 거라는 건 분명하다. 몰라서 그런다.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