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스페셜 원

중앙일보

입력 2021.04.2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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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국뽕’ 축구 팬인 기자에게 조세 모리뉴는 적(敵)이었다. 유럽 축구를 보기 시작했던 2000년대 중반, 그는 박지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을 방해하던 눈엣가시였다. 하지만 특별한 적이었다. 상대적 약체였던 FC포르투를 이끌고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 모리뉴는 그 후광을 등에 업고 첼시 호에 탑승했다. 그는 젊고 자신만만했다. 자신을 ‘스페셜 원’(special one), 즉 ‘특별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명실상부했다. 맨유와 아스널의 양강 체제를 단숨에 무너뜨리며 첼시 FC에 전성기를 선사했다.

인테르 밀란에서는 ‘역대 최강팀’ FC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을 연파하고 유럽 정상을 다시 밟았다. 리그와 코파 이탈리아(FA컵)까지 독차지하면서 이른바 ‘트레블’의 주인공이 됐다. 경력의 정점이었다. 그의 축구는 뒷문을 걸어 잠근 뒤 역공을 펼쳐 점수를 얻는 실리 축구였다. 재미없는 ‘안티 풋볼’이라며 그를 비판한 이들도 성과까지 무시할 순 없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를 맡았을 때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라이벌 바르셀로나와 비교하면 그의 성적은 초라했다. 어느새 ‘고인 물’이 된 실리 축구는 ‘티키타카’ 혁신을 당해내지 못했다. 남 탓을 하면서 팀을 편 가르기 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불명예 퇴진했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첼시와 맨유에서도 불화와 갈등을 남긴 채 각각 2년 반 만에 경질됐다.

토트넘 홋스퍼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그는 달라진 듯 보였다. “이제 스페셜 원이 아니라 험블 원(humble one·변변치 않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다. 하지만 전술은 판박이였고, 편 가르기 논란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그는 취임 1년 반 만에, 공교롭게도 토트넘 등 12개 팀이 슈퍼리그 출범 발표를 하면서 축구판을 뒤흔든 그 날 쫓겨났다. 새 판은 그를 거부했다. 어느덧 58세인 모리뉴가 다시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적다.

그를 보면서 변화와 혁신 없이 한때 통용됐던 생각만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 결국 설 땅을 잃게 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남 탓과 편 가르기가 몰락의 촉진제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축구판에만 통용되는 진리는 아닐 것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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