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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못 지켰다” 자책감에 순직한 소방관, 현충원에 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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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함께 근무했던 고 정희국 소방위(왼쪽)와 고 강기봉 소방교의 생전 모습. [사진 울산소방본부]

함께 근무했던 고 정희국 소방위(왼쪽)와 고 강기봉 소방교의 생전 모습. [사진 울산소방본부]

인명구조에 함께 나섰던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순직한 고(故) 정희국 소방위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된다.

태풍 ‘차바’때 함께 출동한 후배 잃어 #3년 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울산본부, 정희국 소방위 오늘 이장

울산소방본부는 “21일 울산시 남구 옥동 공원묘원에 있는 정 소방위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한다”고 20일 밝혔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1월 정 소방위를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하면서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따뜻한 봄에 이장을 희망하는 유족의 뜻에 따라 21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며 “안장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족과 소방공무원, 지인 등 최소 인원만 참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 소방위(당시 41세)는 2019년 8월 5일 울산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 그의 죽음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하루 뒤 그의 사물함에서 3년 전 죽은 후배 강기봉(당시 29세) 소방교의 근무복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이 발견되면서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울산 온산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던 정 소방위와 강 소방교는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로 불어난 강물에 고립된 주민을 구조해 달라는 신고를 받고 함께 출동했다. 당시 “차 안에 사람 2명이 갇혀 있다”는 구조 요청에 두 사람은 울주군 회야댐 수질개선사업소 앞으로 달려갔지만,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정 소방위와 강 소방교가 물살에 갇히게 됐다.

정 소방위는 전봇대에, 강 소방교는 가로등에 의지해 얼마간 버텼다. 그러다 강 소방교가 “더는 못 견디겠어요”라고 했고, 정 소방위는 후배만 보낼 수 없어 같이 물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러나 “꼭 함께 살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정 소방위는 당시 물에 뛰어들어 몇 바퀴를 구른 뒤 수면 위로 떠올랐다. 1m쯤 앞에 강 소방교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정 소방위가 기억하는 강 소방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 소방위는 휩쓸려 들어갔다 떠오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약 2.4㎞ 하류에서 튕겨 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강 소방교는 다음날인 6일 오전 11시 10분쯤 실종 지점에서 강 하류를 따라 약 3㎞ 떨어진 지점의 강기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 후 3년. 동료들은 정 소방위가 슬픔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던 정 소방위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 후 그의 차 안과 휴대전화 등에서는 “너무 괴롭다”는 내용의 A4 용지 25장 분량의 글이 발견됐다.

이후 울산소방본부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정 소방위가 구조구급 활동 중 사망했다며 ‘위험직무 순직’을 신청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5월 21일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입은 재해가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으로 인정된다”며 정 소방위의 위험직무순직을 승인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에 대해 일반 순직이 인정된 경우는 있었으나 위험직무 순직이 인정된 것은 정 소방위가 처음이다. 이어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1월 6일 정 소방위를 국가유공자로 등록했고, 11월 25일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했다. 이어 울산시와 울산소방본부는 지난해 12월 정 소방위에게 1계급 특별승진 임용장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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