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계좌 열기 하늘의 별따기...암호화폐거래소, 무더기 폐쇄될까

중앙일보

입력 2021.04.20 12:21

업데이트 2021.04.20 17:34

지난 14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중ㆍ소규모 거래소의 무더기 폐쇄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중은행이 이들 중·소 규모 거래소에 암호화폐 매매를 위한 실명 계좌 발급을 꺼리고 있어서다. 지난달 25일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의 유예기간이 오는 9월 만료되면 실명 계좌를 구하지 못한 대부분 거래소가 폐업할 가능성도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암호화폐거래소에 적용되는 과태료 부과 기준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 보고 등에 관한 검사 및 제재규정' 규정변경을 지난달 25일 시행했다.

시행령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가 부여되고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은 뒤 신고절차를 거쳐야만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어기면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법정 최고금액(1억원)의 30~60% 선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실명 거래계좌 계약을 맺지 않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남은 시간은 약 5개월가량이다. 지난달 시행된 특금법의 유예 기간이 오는 9월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은행과 실명 거래계좌 계약을 맺지 않으면 폐업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실명 거래 계좌가 없으면 암호화폐를 또 다른 암호화폐로만 바꾸는 중개 업무만 할 수 있고,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교환할 수 없어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 100곳이 넘는 암호화폐거래소 중 은행과 실명 계좌를 트고 거래하는 곳은 대형 거래소로 분류되는 빗썸·코인원·업비트·코빗 4곳뿐이다.

문제는 시중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내주기 꺼리는 데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은행에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발급을 신청하면 은행이 거래소의 위험도ㆍ안전성ㆍ사업모델 등을 종합 검토해 실명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사실상 거래소의 안정성에 대한 검증을 은행이 맡게 돼 은행이 ‘연대 책임’을 지는 구조인 셈이다.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 계좌를 발급해줄 이유가 없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가 지난 18일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ㆍ사기 등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특별단속 방침까지 내리면서 시중 은행의 부담감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 검증의 책임을 은행이 쥐고 있는 꼴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계좌를 내준 은행에 부실 검증 책임을 물어 피해 보상까지 물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결국 은행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만큼 대형 거래소를 제외하고 살아남는 곳은 손에 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중 은행들이 실명 거래 계좌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대부분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는 계좌 개설과 관련한 시중은행과의 협상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특히 자금세탁 방지 기술 등 거래소의 안정성과 관련된 통일된 기준이 없는 탓에 은행마다 제시하는 각기 다른 기준을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중소규모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개정된 특금법의 핵심 사항인 자금세탁 방지와 관련된 기술을 갖춘다고 갖췄는데, 금융 당국에서 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공표하지 않아서 은행마다 맞춰야 할 기준이 달라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능력이 닿는 데까지 시중은행과 협상을 진행해보고 여건에 따라 협상 대상을 지방은행까지 넓힐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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