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물가와 금리 상승 여파로 금융시장이 갑자기 흔들리는 ‘시장 발작(tantrum)’ 가능성을 경고했다.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 자리에서다. 이날 회의엔 금융위원회ㆍ한국은행ㆍ금융감독원ㆍ국제금융센터 관계자도 참석했다.
이 차관은 회의를 주재하며 “금융시장이 상당 기간 저물가ㆍ저금리에 적응된 상태인 만큼, 물가 및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게 불거질 경우 시장이 발작적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으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물가와 금리도 덩달아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이 차관은 “선진국에 비해 신흥국의 경기 회복이 더딘 불균등 회복 양상이 관찰되고 있어, 신흥국으로부터의 자금 유출 압력이 확대되며 금융시장에 부정적 여파를 가져올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지난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양적 완화(달러화 풀기) 종료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통화가치와 증시가 급락했다.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다. 8년 전과 비슷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서 나오는 중이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가계ㆍ기업 할 것 없이 크게 불어난 빚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과 국제결제은행(BIS)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1998조3000억원, 기업부채는 2137조60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가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부채는 1년 만에 352조7000억원 증가하며 처음 40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1924조5000억원의 배가 넘는 민간부채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상황이다.
이 차관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들이 상존하는 만큼 국내 금융시장으로의 여파는 물론 한국 경제에 나타날 수 있는 파생적 영향들을 보다 폭넓고 세심히 살펴야 한다”며 “금리 상승이 가져올 수 있는 가계ㆍ기업의 부채 부담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 부담 증가, 선진국ㆍ신흥국 간의 불균등 회복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파급 효과 등이 대표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리 상승이 가져올 수 있는 가계ㆍ기업의 부채 부담을 면밀히 분석하고, 취약 부문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서민금융 공급 확대, 신용 등급 하락 기업에 대한 대출 영향 최소화 등을 착실히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이 차관은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