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천연이라는 미신과 짝사랑에 빠진 사회

중앙일보

입력 2021.04.20 08:0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100)

언제부턴가 우리는 천연(자연)식품과 짝사랑에 빠졌다. 천연은 좋고 합성(가공, 양식)은 나쁘다는 믿음이 유사종교에 가깝다. 마치 음식을 건강지킴이쯤으로 여기고 ‘식약(食藥)이 동원’이라는 말로 기원전의 히포크라테스까지 소환한다. 우리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유별나다는 거다. 과연 천연은 선이고 합성은 악일까.

같은 식품에 대한 평가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전문가(?)마다 좋고 나쁨이 죽 끓듯 한다. 학문적 근거와 일관성이 없는데도 소비자는 이런 왜곡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천연을 좋아하는 풍조는 농약과 비료 없이 자란 먹거리가 몸에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다. 그럼 과연 과거 원시식단을 먹고 산 사람들이 질병이 없고 건강했을까?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천연식품이란 단어는 없었고 모든 음식이 천연이고 자연이었다. 모두 무공해 청정 환경에서 자란 순 토종 자연산만 먹었다. 그래도 우리의 평균 수명은 30~40세에 불과했다. 질병에 시달렸고 오래 살지 못했다. 이것이 의료기술의 부족과 불결한 환경 때문으로 둘러대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천연을 좋아하는 풍조는 농약과 비료 없이 자란 먹거리가 몸에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다. 천연과 인공의 구분이 쉬워 보이지만 조금 따지고 들면 금방 모호해진다. [사진 pxhere]

천연을 좋아하는 풍조는 농약과 비료 없이 자란 먹거리가 몸에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다. 천연과 인공의 구분이 쉬워 보이지만 조금 따지고 들면 금방 모호해진다. [사진 pxhere]

천연과 인공의 구분이 쉬워 보이지만 조금 따지고 들면 금방 모호해진다. 농사 자체가 지극히 인공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농산물은 자연에서 자생하는 것 중 독성이 적은 것을 선택해 개량한 것이다. 과거에는 교배가 육종의 핵심기술이었다. 이런 기법이 발전해 지금의 GMO(유전자조작)가 됐다. GMO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반응이 아직 심하다. 다분히 오해에서 비롯됐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의 입장이다.

종래의 육종은 자웅의 유전자를 섞어 우량종을 선발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효율은 우연과 낮은 확률에 의존했다. 대신 GMO는 특정 유전자의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바꾼 것이다. 어떤 성질의 것이 나올지 모르는 종래의 육종법보다 위험할 것도 없다. GMO라고 해서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수만 개의 유전자 중에 한두 개만을 바꾸거나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 유통되는 인슐린, 성장인자, 각종 의약품, 아미노산이 전부 이런 GMO의 산물이다.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콩, 옥수수와 천연 면화가 거의 GMO라는 것. 20~30년간 먹어왔지만 한건의 사고도 없었다.

지금도 일부에선 의약품은 인공이므로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의학을 부정하고 유사 과학을 숭배하는 부류다. 이들은 병에 걸려 약이나 병원의 치료로 나으면 당연하고 자연 요법이나 음식으로 치유했다면 열광한다. 그것이 우연이고 플라시보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비타민에 천연이 있고 인공이 있으며, 활성이 있고 불활성이 있는 것으로도 안다. 합성과 천연 사이에는 한 티끌의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활성도 비활성도 없다.

방송을 보면 몸에 좋다는 식품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그중에 제대로 된 약품 하나 등장하지 않을까. 웃픈 좋은 예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근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을 만들어 부작용이 없고 효능이 좋은 천연물질을 탐색하고자 1조4000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었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지금은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어떤 식품에 조금이라도 독성물질, 발암물질, 잔류 농약 등이 검출되었다 하면 언론에서 난리가 난다. 그런데 그 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극미량이라도 들어있기만 하면 나쁜 것,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안다. 분석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식품은 없다. 과거에는 없다고 결론지었던 미량임에도 호들갑을 떨고 있다.

대부분의 식품사고는 천연물에 기인한다. 자연 독은 무수히 많다. 감자 솔라닌, 버섯독, 복어독, 뱀독, 벌독, 곰팡이독, 후추의 사프롤, 시금치의 옥살산, 고사리, 죽순독, 아몬드독, 매실의 아미그달린, 샐러리의 미리스티신 등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런 물질을 줄이고 무독하게 만드는 것이 가공이고 조리이고 인공이다.

실제 잔류농약이나 비료살포로 치명적 피해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유기농 식품을 통한 세균 감염으로 죽는 사람은 매년 수백 명씩 나온다. 유기농을 생식으로 즐기는 야채의 경우 인체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대장균 O-157 감염으로 30여명이 숨지고 3000여 명이 감염됐다. 영양 측면에서도 천연과 양식, 유기농과 일반농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식품사고는 천연물에 기인한다. 자연독은 무수히 많다. 감자 솔라닌, 버섯독, 복어독, 뱀독, 벌독, 곰팡이독, 후추의 사프롤 등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사진 pixabay]

대부분의 식품사고는 천연물에 기인한다. 자연독은 무수히 많다. 감자 솔라닌, 버섯독, 복어독, 뱀독, 벌독, 곰팡이독, 후추의 사프롤 등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사진 pixabay]

이건 어떤가. 쓰레기를 썩혀 나온 메탄가스는 천연이고 석유에서 뽑은 메탄가스는 인공인가? 바닷물을 햇빛에 말린 소금은 천연이고, 해수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불로 끓여 만든 정제염은 인공인가. 유기농으로 유명한 P사처럼 두부응고제로 화학약품 염화칼슘을 쓰지 않고 바닷물로 만들었다면 그게 천연두부인가. MSG보다는 다시마 우린 물이, 설탕보다는 벌꿀이 더 천연이고 안전할까. 과연 천연이 안전의 보증수표일까.

사실 요즘의 가공식품은 모두 다 충분히 안전하다. 자기 공장 식품은 제 자식에게 먹이지 않는다는 건 옛 얘기다. 우리만큼 식품 관리가 까다로운 나라도 드물다. 식약처라는 데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관리한다. 나는 해썹(HACCP)의 민간자문의원이라 가끔 가공 현장에 실사를 간다. 내가 본 곳은 우리 집 부엌보다 더 깔끔했다. 이제 가공식품 믿어도 될 만큼 안전하다.

세상에는 특별히 훌륭한 음식도, 나쁜 음식도 없다. 가공이고 인공이라 해서 나쁜 게 아니라는 것. 가공은 음식의 맛과 질, 안전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세상에서 가장 인공이고 가공인 것이 동물사료다. 100% 사료만 먹인 애완동물이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사료에 들어있는 수십 가지 첨가성분을 보면 호사가들 기겁을 할 거다. 동물과 사람은 달라서 그렇다고? 미안하지만 동물의 생리현상이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음식이란 생명유지를 위한 것이지 특별한 치유효능이 있어 먹는 게 아니다. 음식을 가공하고 조리해 먹고 나서부터 인간의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고 더 건강해졌다. 천연보다 가공이 오히려 더 위생적이고 과학적이다. 가성비 낮고, 믿음이 가지 않는 천연과 유기라는 말에 혹하지 말자.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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