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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초경 11세 소녀 쇼크 "수십년전 살충제 노출 외할머니 탓”

중앙일보

입력

살충제인 DDT 농약병. [Venggage]

살충제인 DDT 농약병. [Venggage]

1950~70년대 대량으로 사용됐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DDT.
과거 DDT가 대량 사용될 당시 DDT에 노출됐던 여성이 출산한 딸은 물론 다음다음 세대인 외손녀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환경호르몬 분류돼 사용금지 #노출 많았던 여성의 외손녀는 #이른 초경과 비만 위험 높아 #노출 적은 경우의 2~3배 수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공중보건 연구소(CHDS) 연구팀은 최근 '암 역학, 바이오마커 및 예방(Cancer Epidemiology, Biomarkers and Prevention)'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과거 DDT에 노출된 여성(외할머니)의 외손녀에게서 비만과 조기 초경 같은 영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79년 시판 금지돼 

지난 2월 스페인 과학연구센터(CSIC)의 연구원이 바르셀로나에있는 환경평가 및 물연구소(IDAEA) 실험실에서 살충제 DDT를 분석하고 있다. 스페인이 1977 년 DDT 사용을 금지했으나 지금까지도 자연계에 남아 새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월 스페인 과학연구센터(CSIC)의 연구원이 바르셀로나에있는 환경평가 및 물연구소(IDAEA) 실험실에서 살충제 DDT를 분석하고 있다. 스페인이 1977 년 DDT 사용을 금지했으나 지금까지도 자연계에 남아 새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DDT는 1950~70년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된 살충제로 환경호르몬의 하나로 분류된다.

미국에서는 1972년 사용이 금지됐고, 국내에서도 1979년 시판이 금지됐다.

과거에도 DDT에 노출된 여성의 딸에게서는 비만과 함께 초경이 앞당겨지는 사례가 보고됐고, 유방암의 발생빈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다.
하지만, DDT 노출이 외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HDS 연구팀은 1959~196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스트 베이 지역에서 산부인과 치료를 받은 외할머니와 그 딸, 외손녀를 추적 조사했다.

50년 이상 보관된 외할머니의 혈액에서 DDT를 분석했고, 키와 체중에 바탕을 둔 체질량 지수(BMI)를 산정했다.
또, 외손녀의 초경 시기와 26세 때의 체질량(BMI)도 분석했다.

3세대가 동시에 조사 대상에 포함된 사례는 외손녀의 비만 조사 결과를 얻은 것이 258개 사례, 외손녀의 초경 시기 조사가 이뤄진 것이 235 사례였다.

에스토로젠 유사한 o,p'-DDT가 문제

DDT의 분자식.

DDT의 분자식.

상용 살충제 DDT는 p,p'-DDT(4,4'-DDT)가 75~85%, 이성질체인 o,p'-DDT(2,4-DDT)가 15~20% 들어있다.

CHDS 연구팀의 분석 결과, 외할머니 혈액 속에 든 o,p'-DDT 농도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o,p'-DDT는 체내에서 p,p'-DDT보다 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과 유사한 성질을 더 많이 띠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먼저 외할머니 285명의 혈액 속 o, p’-DDT 농도를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 순서로 나열했다.
그중 농도가 낮은 순서로 3분의 1에 속하는 외할머니와 외손녀 그룹(그룹 A)을 뽑았고, 또 농도가 높게 나타난 상위 3분의 1의 외할머니와 외손녀 그룹(그룹 B)을 구분했다.

외손녀가 26세일 때 BMI가 30 이상으로 비만을 보인 사례가 B그룹이 A그룹의 2.59배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외손녀가 11세 이전에 일찍 초경을 겪을 위험도 분석했는데, 외할머니의 DDT 농도가 높은 B그룹이 A그룹보다 조기 초경이 나타난 경우가 2.08배였다.

외할머니의 BMI와 외손녀의 초경 시기와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호르몬 노출 줄여야" 

국내에서도 지난 2017년 경북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 계란에서 잔류 허용치를 넘어서는 DDT 성분이 검출됐다. 사진은 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닭. [중앙포토]

국내에서도 지난 2017년 경북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 계란에서 잔류 허용치를 넘어서는 DDT 성분이 검출됐다. 사진은 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닭. [중앙포토]

연구팀은 논문에서 "1950~60년대 임신한 외할머니의 DDT 노출이 외손녀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은 여자 태아(딸)의 몸속 난소가 DDT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비추어 보면, DDT에 노출된 딸의 난자 DNA가 메틸화됐고, 이로 인해 외손녀의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후성 유전학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환경호르몬이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노출을 줄이는 등  예방 조처를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외할아버지 등이 DDT에 노출됐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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