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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길냥이 엄마 박전애 씨의 인생 사진 도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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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니와 밤비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박전애 씨는 이 사진 촬영 후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화니와 밤비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박전애 씨는 이 사진 촬영 후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저의 반려묘 화니, 밤비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멍뭉이는 성가시고 냥님은 마냥 무서워하던 저였습니다.
몇 해 전 봄날,
근무지 캠퍼스 산책길을 거닐다가 한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나풀거리는 하얀 나비를 잡으려고 두 발로 서서
하얀 찹쌀떡 같은 손을 휘젓는 초콜릿색 턱시도 냥이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이름을 '몽이'라 지어줬습니다.
꼬리가 몽땅하다고 해서 '몽이'라고 지은 겁니다.

그날부터 1일,
몽이와 나의 묘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몽이만 사료를 챙겨주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하나둘 캠퍼스 냥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몽이 밥 먹을 때 따라오던 몽이 엄마, 몽이 언니를 챙겨주다가
아예 캠퍼스 냥이 모두를 챙겨주게 된 거죠.
그때부터 좋아하던 치킨을 끊었죠.
치킨 한 마리 값이면 고양이 캔이 한 박스고
사료가 한 포대니까요.

점심시간을 이용해 냥님들 상태도 파악할 겸
매일 밥을 챙겨줍니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설치해둔
급식기를 이용하게 합니다.
오다가다 밥을 먹고 가는 냥이들도 있으니
늘 넉넉하게 넣어둡니다.
이 모두 몽이와의 묘연으로 비롯된 겁니다.

몽이를 만나면서 알게 된 기적 하나,
언어가 없어도 교감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언어가 없으니 서로의 몸짓과 소리를 더 관찰하게 되죠.
급기야 화난 건지,
기분 좋은 건지,
배고픈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젠 그 관찰력이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말로 표현 안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읽히네요.

몽이와의 묘연은 3년이었어요.
설 연휴를 보내고 왔더니 그 이후로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몽이 아가 냥이 네 마리 있었습니다.
그중 두 마리도 몽이와 함께 사라지고
두 마리만 남은 채였습니다.

어느 날 두 마리가 감기가 심하게 걸렸길래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이후 캠퍼스에 그냥 두면 살기 어려울 것 같아
집에서 키우게 되었어요.
올 7월이면 3년이 되니
사람 나이로는 28세 아리따운 청년 냥이가 되었네요.
몽이와 3년,
그리고 그녀의 딸 화니, 아들 밤비와 3년의 묘연이네요.
우리의 묘연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까요?
독자 박전애


사진을 찍으러 가기 전 박전애 씨와 통화했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야생에서 난 냥이들이라 통제가 거의 불가능해요.
밤비는 다른 사람이 있으면 숨어서 나오질 않고요.
화니는 3초 이상 안을 수 없습니다.
야생에 있을 땐, 큰 나무 다섯 그루를
제 맘대로 오르락내리락하던 애들이라서
얼마나 날랜지 모릅니다.
워낙 사진 찍기 힘드니 셋의 사진을 남겨보려고
인생 사진을 신청한 겁니다만,
해놓고 보니 함께 사진 찍는 게 가능할지 걱정이네요.”

가서 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비교적 얌전한 화니는 사람 곁에 오기는 합니다만,
정말 3초를 넘기지 않습니다.
밤비는 숨을 수 있는 모든 구석과
이불 속을 숨어들며 숨바꼭질입니다.
박전애 씨가 "셋이 함께 사진 찍는 게 소원입니다"라며
말한 이유를 알 듯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편안해 할 캣폴에 올려보자고 했습니다.
화니를 붙잡아 올려놓으면 밤비가 숨어버리고,
밤비를 붙잡아 올려놓으면 화니가 도망가버립니다.
아무리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심정으로 한 시간 남짓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도망 다니기를 그만뒀습니다.
급기야 둘이 나란히 앉아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결국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화니, 밤비 이 친구들도 '냥이 엄마' 박전애 씨의
마음을 알아챘나 봅니다.
나란한 셋, 늘 행복한 묘연이기를 바랍니다.

권혁재·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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