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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일본 20대 80%가 스가 지지···이념 아닌 '내 문제' 중요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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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사립대를 졸업하고 금융권에서 일하는 29세 일본인 남성 A씨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리버럴(진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몇 번 참여한 선거에서 계속 집권 자민당에 표를 던졌다. 6년 전 취업 당시의 기억이 컸다. "대학 신입생 시절 취업이 힘들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다행히 제가 취업하던 시기엔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자민당에 대한 불만도 많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선 꽤 노력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자민당 핵심 지지층 부상한 20대 #보수·진보 이념 판단에 세대차 #이념과 투표의 연결고리 느슨 #"젊은층에 먹히는 정책이 열쇠"

오히려 50대인 A씨의 부모님은 현 정권에 더 비판적인 입장이다. "부모님은 헌법 개정 문제라든지, 코로나19 대응 등에서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생각엔 야당이 집권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A씨와 같은 20대는 일본 자민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힌다.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출범한 2012년 무렵부터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일본 젊은이들은 보수화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수치로만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맞다"이다. 2017년 열린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20대의 자민당 지지도는 40.6%로, 전체 지지율(36%)보다 4%포인트 높았다. 반면 40~60대의 자민당 지지율은 30%대 초반에 그쳤다.

2019년 4월 1일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당시 관방장관). 스가 총리는 이후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젊은층에 인기를 얻었다. [교도=연합뉴스]

2019년 4월 1일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당시 관방장관). 스가 총리는 이후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젊은층에 인기를 얻었다. [교도=연합뉴스]

지난해 9월 '아베 계승'을 내세우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이 들어선 후에도 이런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마이니치 신문과 사회조사연구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가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전체 57%인데 비해 18~29세에서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도 18~29세가 59%로 가장 높았고, 30~70대는 30%대였다.

하지만 학자들은 단순히 '젊은층의 보수화'라고 말하기엔 상황이 복잡하다고 지적한다. 이 분야에서 주목받은 것이 엔도 마사히사(遠藤晶久) 와세다대 교수(정치학)의 세대별 이념 성향 및 투표 행동에 관한 연구다. 엔도 교수는 2019년 펴낸 『이데올로기와 일본정치-세대별로 다른 '보수'와 '혁신'』이란 책에서 보수와 진보(일본에서는 '혁신' 또는 '리버럴'로 표현)를 표방하는 정당에 대한 인식이 세대별로 상당히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자민당은 보수 정당이고,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은 진보 정당이라는 것이 일본 기성세대의 상식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각 정당이 가진 이념 성향에 대해 명확한 판단 기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의 학생이 공산당 등 야당을 '보수'로 인식했으며, 심지어 극우 성향인 '일본유신회'를 혁신 정당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엔도 교수는 "일부 학생들은 헌법 개정 등 변화를 추구하는 자민당 쪽이 보다 혁신적이고, 이에 반대하며 현상 유지를 강조하는 야당을 보수적이라 생각했다"면서 "이는 단지 '무지(無知)'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이념에 대한 기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층의 경우 '이념-정당'의 연결이 뚜렷하지도 않고, 이념 성향이 실제 투표 행위로 곧바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도카이대 교양학부 김경주 교수는 "일본에서도 젊은층 대다수가 평등과 공정 등 진보적 가치를 지지한다"면서 "하지만 이념적 성향이 정당에 대한 선호나, 그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념적으로 나와 맞는 정당에 투표하기보다는 장기 불황에 따른 실업 등으로 사회적 지위가 저하된 젊은층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은 정당에 투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층의 자민당 지지를 '보수화'와 직접 연결시키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연령별 스가내각 자민당 지지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령별 스가내각 자민당 지지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진보 야당의 정치적 몰락으로 자민당 1당 독주체제가 이어지는 상황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진보적인 가치에 표를 던지고 싶은 젊은이들은 아예 투표하지 않거나, 사표를 막기 위한 심리로 자민당에 흡수된다. 실제로 엔도 교수의 연구에서도 뚜렷한 좌파 성향을 가진 20대 중 30%는 자민당에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즈오카현립대 사회학과 대학원생인 노자키 아야카(野崎文香·25)도 "일본 젊은이들이 보수화됐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성평등이나 환경 문제 등 진보적 이슈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면서 "단 그런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으니 투표를 하지 않거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는 정당인 자민당에 투표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치·이념적 보수화는 아니지만, 버블 경제 몰락 후 태어난 일본 젊은이들이 더 나빠지지 않는, 즉 현상 유지를 희망하는 쪽으로 '보수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젊은 층 보수화의 실제-'보통이 좋다'고 말하는 래디컬한 꿈』을 쓴 나카니시 신타로(中西新太郎) 간토학원대 교수는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일본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을 갖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라며 "'이보다 나빠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 현 정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진보 가치를 내세우는 정당이 힘이 없으니 보수당인 자민당이 청년층에 소구력 있는 이슈를 선점해 표심을 얻었다는 평가도 있다. 김경주 교수는 "예를 들면 '아베노믹스'는 실제 경제적 성과와는 별개로 젊은이들의 취업 환경을 개선해 20대의 지지를 받았다"면서 "한국 정당들도 현재 한국 젊은이들의 요구를 흡수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