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노년층 희귀질환 '심장 치매', 고령화 시대에 치료 대책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2021.04.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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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홍석근 과장이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의 발생 과정과 치료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인성욱 객원기자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홍석근 과장이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의 발생 과정과 치료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인성욱 객원기자

 인터뷰 홍석근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과장

희귀 질환자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발생 가능성이 낮다 보니 질환 자체를 몰라 의심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진다. 의심하기 어려운 건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이라는 질환이 있다. 주로 고령에서 발생하고 치료받지 못하면 3년 남짓밖에 살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됐다. 하지만 낮은 인지도에 따른 조기 진단의 어려움과 비용 등 치료의 걸림돌이 남아 있다. 지난 14일 만난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홍석근 과장(장기이식센터장)은 ATTR-CM이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서 주목해야 할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ATTR-CM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호흡곤란 등 흔한 증상, 오진 쉬워
심장 이식해도 70~80%는 재발
효과적인 먹는 약 나왔지만 비싸

질환 이름 자체가 생소한데, 어떤 질환인가.
“혈액에는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혈장단백질이 있다. 혈액 속에서 갑상샘 호르몬과 비타민A의 일종인 레티놀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은 4개의 입자가 결합한 사합체 구조인데, 어떤 이유에서든 이 사합체가 분리돼 떠돌다 각 장기에 침착되면 장기의 기능이 떨어진다. 이런 과정으로 심장 근육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ATTR-CM’이다. 단백질 형태에 이상이 생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장기나 조직에 쌓여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을 아밀로이드증이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다. 결국 심장 기능이 쇠약해져 심부전이 된다. 심부전의 원인 질환이다.”
발생 과정을 보면 치매와 비슷해 보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여 신경독성을 유발하고 결국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질환이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심장에 생기는 치매’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생기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TTR의 사합체 구조가 ‘단백질 퇴화(노화)’나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깨진다. 각각 ‘정상형(자연형)’과 ‘유전성(가족성)’이라고 부른다. ‘정상형’ ATTR-CM이 압도적으로 많다. 환자 10명 중 9명이 정상형, 1명이 유전성이다. 정상형의 경우 주로 65세 이상에서 발병한다. 고령이라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매처럼 사람이 오래 살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 중 하나다. 언제 환자가 급속하게 늘지 알 수 없다.”
근데 진단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증상이 너무 일반적이다. 대표 증상이 호흡곤란과 피로감이다. 확진까지 오래 걸린다. 심부전의 원인 질환인 만큼 환자 대부분이 심부전 환자다. 의사도 감별이 쉽지 않아 이뇨제 처방 등 단순 심부전으로 보고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호전되다 다시 악화한다. 또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게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ATTR-CM을 파악하지 못해 판막 수술 후 나아지지 않는 환자도 있다.”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가 쉽지 않겠다.
“그래서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도 이 질환에 대한 인지도를 제고해야 한다. 병명조차 모른 채 사망하는 환자도 있다. 핵의학과에서 전신 뼈 영상 검사(Bone scan)를 통해 확진한다.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의 기대여명은 3.5년에 불과하다.”
효과적인 치료법은 있나.
“심장 이식이 치료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장기 이식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만 이 질환에선 아니다. 심장을 이식해도 70~80%는 전처럼 아밀로이드가 다시 축적돼 재발한다. 심장 이식과 동시에 자가줄기세포 치료를 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적용 대상이 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결과도 좋지 못했다. 근데 다행히 최근 효과적인 치료제(경구약)가 개발됐다.”
어떤 약이고 효과는.
“타파미디스(상품명 빈다맥스) 성분의 치료제다. 2019년 미국에서 출시돼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다. TTR 단백질이 깨지지 않도록 안정화하는 기전의 약이다. 유전성과 정상형 모두에서 효과가 확인됐다. ATTR-CM 환자 44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다기관, 이중맹검 3상 임상연구 결과, 타파미디스 투여군의 사망률은 29.5%로 위약군(42.9%)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 수명 연장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일한 치료제다.”
환자들이 혜택을 많이 보겠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증 질환 신약이 그렇듯 비용 부담이 크다. 한 달에 약값만 1000만원 정도 든다. 실제로 비용 문제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많다. 최근에도 84세, 92세 환자가 모두 치료를 포기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이 약은 더 이상의 진행을 막는 기전이지만 실제로 써 보면 심장의 자연 치유력이 더해져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도 많다. 환자 수가 적고, 심부전으로 고생하는 환자라 목소리가 작은 데다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건강보험 적용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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