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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새 산막 식구된 거위 한쌍…잡초 뽑기 일손 덜겠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75)

봄비가 함초롬 내린 날 아침, 나는 닭장에 들러 계란을 꺼내고 부화시킬 계란에 표식하며 태어날 병아리를 기다린다. 우산대를 고르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북돋워 준다. 물통의 물을 갈고 모이도 챙긴다. 지난번 심어놓은 여섯 그루 매화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잘 자라고 있음을 확인해본다. 파릇파릇 돋고 있는 풀을 본다. 언젠간 예초기로 쳐내야 할 만큼 성가신 존재이겠지만 지금은 마냥 예쁘고 귀여워만 보인다.

모든 생명의 새끼는 예쁘다. 종을 지키려는 하늘의 뜻일 테다. 매화와 개나리는 피었고 조팝나무는 아직, 진달래도 아직이다. 아, 목련도 피기 시작했다. 목단은 열심히 새순을 내고 장미는 열심히 줄기를 뻗고 있다. 물푸레나무, 감나무, 자두나무도 잎을 머금고 꽃피울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이제 보니 산벚꽃도 아직이다.

어김없는 자연의 질서에 경탄이 나오는 하루다. 새는 지저귀고 수탉은 목청을 높인다. 평화로운 산막의 아침 풍경. 곡우는 마늘을 다듬고 나는 글을 쓴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산막이 좋다. 무엇과도 바꿀 생각이 없다. 반드시 지킬 것이다.

이 거위 한 쌍을 며칠 지켜봤는데, 잡초를 뽑아 먹는 것이 아닌가. 잡초 관리로 늘 고생을 했는데, 거위 부부 에게 신세 좀 질 것 같다. [사진 권대욱]

이 거위 한 쌍을 며칠 지켜봤는데, 잡초를 뽑아 먹는 것이 아닌가. 잡초 관리로 늘 고생을 했는데, 거위 부부 에게 신세 좀 질 것 같다. [사진 권대욱]

새 식구가 왔다. 점잖고 말 잘 듣는 거위 한 쌍이다. 거위는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에 물통을 묻어놓고 깨끗한 물을 공급해줄 수 있도록 했다. 닭과의 공존이 걱정됐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를 좀 하더니 지금은 전혀 지장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닭 다섯 마리와 거위 두 마리. 오늘 아침에 보니 대백이랑도 잘 노는 것 같다.

이 거위 한 쌍을 며칠 지켜봤는데, 얘들이 잡초를 뽑아 먹는 것이 아닌가. 잡초 관리로 늘 고생을 했는데, 이 녀석들에게 신세 좀 질 것 같다. 이름을 지어줘야 할 텐데 뭐라 지어야 할지 고민이다. 거순이, 거돌이? 문을 열어주어 거위들이 마당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 종종걸음이 귀엽다. 당분간 거위들과 재밌게 지낼 생각에 즐겁다. 나는 오늘도 생명의 공존을 꿈꾼다.

오늘은 앞마당 분수대를 교체하려 한다. 처음엔 통나무로 우물 정자 받침을 놓고 원형 맷돌을 그 위에 얹고 스프링클러를 장착했었다. 세월이 한 10여년 가다 보니 나무는 썩어 주저앉고 볼품없이 되었다. 차일피일했는데 이제 때가 되었다. 이번엔 나무 대신 화강석 경계석을 받침대로 쓰려고 한다. 스프링클러와 분수대를 겸한다. 물 공급은 바로 옆 수도전으로 하고 고무호스로 탈부착한다.

이왕 하는 거 18년 전 등짐 저 나른 경계석과 맷돌 몇 개와 FRP 물통 하나로 만들었던 윗데크쪽 분수대도 이번 기회에 가장자리 쪽 경계석은 교체하려 한다. 화강석이 좋겠다. 무언가를 새로 만든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 부부가 매화를 심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희망을 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진 권대욱]

우리 부부가 매화를 심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희망을 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진 권대욱]

50년 전, 누가 물을 사 먹을 거라 생각했는가. 10년 전 누가 공기를 돈 주고 정화할 거라 생각했는가. 온 천지를 가린 황사와 미세먼지를 보며 미래의 우리 자손이 한없이 가엾어진다. 모두가 우리의 죄다. 이 죄를 오늘도 의미 없이 짓고 있는 우리. 숲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지난 남도 여행에서 구입한 매화 여섯 그루를 심는다. 수년 전에 심었던 능수매는 아직 꽃망울만 달려있고 꽃은 아직이니 지금 심어도 되겠다 싶다. 산막에서 손수레는 필수다. 장작도 싣고, 연탄도 싣고, 그리고 묘목도 싣는다. 모두 여섯 그루. 이제 독서당 옆으로 운반한다. 제일 매화를 심고 싶었던 곳이다. 독서당 오른쪽 언덕배기에 한 그루, 그리고 독서당 올라가는 초입에 한 그루. 이렇게 두 그루를 심었다.

구덩이를 파고, 물을 주고, 묘목을 심고, 흙을 덮고, 또 물을 주고. 이런 모든 순서가 간단치만은 않다. 혼자 하기에는 힘들다. 힘들다기보다는 외롭다. 곡우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이렇게 독서당 옆에 두 그루, 이층집 옆에 두 그루, 그리고 언덕 막 앞에 두 그루 잘 심었다.

우리 부부가 매화를 심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희망을 심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물을 주고,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산막에는 매화가 가득할 것이다. 분수대 물을 틀고, 연못에 물줄기를 다시 잇는다. 이렇게 산막에는 봄이 왔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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