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만하면 "나가라"…1년마다 하늘서 뚝 떨어지는 참모총장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중앙일보

입력 2021.04.18 07:00

업데이트 2021.04.18 07:07

지난 30년 동안 육군 참모총장(총장) 평균 임기는 1년 4개월이다. 이는 육군 병사 복무기간 1년 6개월보다 짧다. 4년 임기를 보장받는 미국과 비교하면 절반도 못채운 수준이다.

준비할 틈 없이 임무 맡아
대부분 임기 2년 전 교체
미군 총장 임기 4년 보장

이처럼 매년 군 최고 수장이 바뀌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이 끊기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군 관계자는 “모든 총장은 취임 1년만 지나면 낙마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게 현실이다”고 말한다.

제38대 이성용 신임 공군참모총장(가운데)과 이임하는 제37대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23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거행된 '제37˙38대 공군참모총장 이취임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공군 제공]

제38대 이성용 신임 공군참모총장(가운데)과 이임하는 제37대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23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거행된 '제37˙38대 공군참모총장 이취임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공군 제공]

역대 육군 총장 22명 중 임기 2년을 채운 사례는 이종구ㆍ길형보ㆍ남재준 총장 등 3명뿐이다. 지난해 9월까지 총장을 지낸 서욱 국방부 장관은 평균 수준인 1년 4개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

공군 총장 재임 기간은 1년 6개월로 육군과 비슷하다. 역대 총장 19명 중 임기를 다 채운 사례는 8명으로 3군 중 가장 많다. 하지만 이양호ㆍ조근해 총장 등이 8~9개월 만에 물러났다. 원인철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지난해 9월 총장 재임 1년 4개월만에 후임 이성용 총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육·해·공 참모총장 평균 임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육·해·공 참모총장 평균 임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해군은 1년 9개월로 3군 중에선 임기 2년에 가장 근접하다. 역대 총장은 17명인데 7명이 임기에 도달했다. 22개월 이상 재임해 임기 24월에 근접한 경우도 여럿 된다. 직전 심승섭 총장은 1년 9개월 재임해 역대 해군 평균 수준이다.

총장 바뀌면 간판 갈아 끼우기

지난 12일 육군은 ‘비전 2030’을 선명하고 구체적 구현하는 ‘새로운 기치’를 담은 새 표어를 발표했다. [육군]

지난 12일 육군은 ‘비전 2030’을 선명하고 구체적 구현하는 ‘새로운 기치’를 담은 새 표어를 발표했다. [육군]

지난 13일 육군은 ‘더(The) 강한ㆍ좋은 육군’이라는 새 표어를 선정했다. 지난해 9월 남영신 총장은 취임사에서 ‘내일이 더 강한 육군, 내일이 더 좋은 육군’을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새 표어는 전임 서욱 총장때 만든 ‘강한 육군, 자랑스러운 육군, 함께하는 육군’을 대체한다. 이처럼 육ㆍ해ㆍ공군 수장이 바뀔때마다 표어 갈아끼우기가 빈번하다.

지난해 10월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경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경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15년 9월 취임한 당시 정경두 공군 참모총장은 이듬해 ‘새 조직 문화 건설운동’을 주창하는 ‘청정공군’을 내세웠다. 청(淸:청렴한 공군)ㆍ정(正:정직한 공군)ㆍ공(公:공정한 공군)ㆍ군(軍:군 기강이 살아있는 공군)의 글자를 조합했다.

2017년 8월 정 총장은 합참 의장에 취임했다. 1년 만인 이듬해 9월에는 국방부 장관에도 올랐다. 이때 ‘청정공군’은 ‘청정국방’으로 부활했다. 정 장관은 취임사에서 “오직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청정국방’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10월 충남 계룡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의 공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이 선서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10월 충남 계룡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의 공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이 선서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9월 정 장관이 서 장관에 자리를 넘겨 준 뒤 국방부와 공군에서 청렴과 정직을 강조했던 ‘청정공군’과 ‘청정국방’은 자취를 감췄다. 취재 중 청정국방을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행사나 문서를 기억하는 국방부 직원이나 군 관계자를 찾지 못했다.

수장이 바뀌는 걸 계기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짧은 기간만에 자주 바뀌다 보니 지나가는 행사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군 내부에서 관측된다. 총장이 바뀔때마다 이전 총장의 정책이 백지화 된다는 현장의 불만도 있다.

2019년 12월 서욱 육군참모총장(오른쪽)이 경기도 포천시 6군단 다락대 과학화훈련장에서 전역을 연기하고 훈련에 참가한 5기갑여단 불사조대대 송우석(21) 병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육군 6군단 제공]

2019년 12월 서욱 육군참모총장(오른쪽)이 경기도 포천시 6군단 다락대 과학화훈련장에서 전역을 연기하고 훈련에 참가한 5기갑여단 불사조대대 송우석(21) 병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육군 6군단 제공]

2013년 9월 취임한 권오성 육군 총장은 전투 태세에 집중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정책과 관행을 ‘삭제, 제거, 감소’하는 ‘DEL 혁신’을 추진했다. 하지만 권 총장은 1년도 못지난 이듬해 8월 교체됐다. 새 정책이 자리 잡기도 전에 떠나면서 권 총장의 혁신은 없던일이 됐다.

2015년 9월 취임한 장준규 총장은 ‘간부 정예화, 장병의 인성과 품성 바로 세우기’를 강조해 육군 내 호응이 컸다. 군 관계자는 “공감하는 육군 내부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자리에서 물러난 뒤 정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7년 9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장병들의 거수경례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7년 9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장병들의 거수경례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해군 관계자는 “매번 총장이 바뀔때 가장 크게 흔들리는 건 진급 심사 기준”이라며 “매년 수능 시험 출제 경향이 바뀌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총장 개인 성향이나 출신(병과)에 따라 큰 폭의 변화가 매년 반복돼 실력 위주 진급이 어렵다는 불만이다.

임기 4년 보장 미군, 25년 걸린 개혁 성공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각군 총장의 임기 4년을 보장한다. 취임 78일 만에 경질된 마이클 듀건 미 공군 총장은 예외적인 사례다.

안정적인 재임기간 덕분인지 미군에선 정책의 연속성도 눈에 띈다. 1989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미 육군의 개혁은 4명의 총장이 힘을 합친 결과다. 후임 총장은 전임자의 업적을 토대로 정책 방향을 맞췄다.

지난 13일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제35대·36대 해병대사령관 이·취임 및 전역식'에서 김태성 해병대사령관(오른쪽)이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지휘권을 상징하는 해병대기를 전달받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지난 13일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제35대·36대 해병대사령관 이·취임 및 전역식'에서 김태성 해병대사령관(오른쪽)이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지휘권을 상징하는 해병대기를 전달받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미군에선 후임자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개혁을 이어간 뒤 완료한 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국의 현실에선 과감한 도전을 꿈꾸기 어렵다.

공군 관계자는 “큰틀에선 전임자를 따라가지만 최소한의 기본만 할뿐,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개혁을 시작할 생각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어느날 갑자기 총장…“이젠 할만 하니 나가라”

한국군 제도엔 또다른 문제가 있다. 한국군 총장은 내정 발표가 난 뒤 며칠만에 바로 취임한다. 별도의 준비 기간은 없다. 일단 총장에 취임부터 한 뒤 총장 역할 준비에 들어간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준비 안된 상태에서 임기를 시작한다”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지난해 4월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인도-태평양 공군지휘관 화상회의에서 회의 내용을 메모하고 있다. [공군 제공]

지난해 4월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인도-태평양 공군지휘관 화상회의에서 회의 내용을 메모하고 있다. [공군 제공]

새로운 총장이 오면 각군 본부 정책실은 ‘인수위’ 역할을 맡아 새로운 정책 만들기에 나선다. 이때 총장이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본격적으로 학습한다.

총장 취임 이후 최소 3개월 정도 지나야 실질적인 총장 역할이 가능한 배경이다. 이때문에 실질적인 임기는 1년도 못된다는 지적이다.

“임명한다는 발표 난 뒤 서둘러 총장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잘 할 수 있겠다 싶으니 물러나라고 하더라” 총장을 지냈던 장군들의 하소연이다.

총장 임기 늘리자는 주장엔 “글쎄…”

미국에선 임기 만료 수 개월전에 차기 총장을 지명한 뒤 내실있는 인수 인계를 진행한다. 차기 총장에 지명된 장군은 현직 총장 곁에서 경험을 전수 받고 앞으로 4년 간 이끌어 나갈 방향을 준비한다.

2018년 11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사령관·유엔사·한미연합사 사령관 이·취임식에 참석한 로버트 에이브람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 인도태평양사령관, 미군 부참모총장, 정경두 장관(오른쪽부터) [중앙포토]

2018년 11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사령관·유엔사·한미연합사 사령관 이·취임식에 참석한 로버트 에이브람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 인도태평양사령관, 미군 부참모총장, 정경두 장관(오른쪽부터) [중앙포토]

미군은 청문회 대상인 대장급 장성 인사를 꼼꼼하게 진행한다. 시간을 두고 내정 한 뒤 청문회와 이임 준비를 한다. 주한미군사령관도 수 개월 전에 내정한 뒤 한반도 관련 임무 수행 준비를 마친 뒤 부임한다.

미국처럼 임기를 4년으로 늘리자는 주장엔 장성단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임기를 4년으로 늘리면 4기수 중에 총장은 1명만 나오는 꼴이다.

최대한 많은 임관 기수에서 총장을 배출하려면, 더 많은 장군에게 총장의 기회가 주어지려면, 총장 임기가 짧아야 가능하다. 지금도 매년 배출하는 모든 기수에서 총장이 나오진 못한다.

군 관계자는 “당장 총장 임기를 늘리면 전반적인 인사 적체 현상이 생긴다”며 “군 인사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살펴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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