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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열아, 대권 준비됐나" 대학·고교 동창은 입 모아 물었다

중앙일보

입력

구수한 윤석열과 윤석열의 진심. 리딩라이프북스·체리 M&B

구수한 윤석열과 윤석열의 진심. 리딩라이프북스·체리 M&B

“기업이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윤석열의 진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들의 인터뷰가 모인 『구수한 윤석열』과 윤 전 총장의 고교 동창이 쓴 『윤석열의 진심』은 지난 13일과 지난 14일 연달아 출간됐다.

동창생들 애정이 듬뿍 담긴 일종의 ‘위인전’ 성격이지만, 두 책의 궁극적 질문은 ‘윤석열은 대통령 자질 있나’로 모아진다. 이 책들에는 윤 전 총장의 학창 시절과 인간적 면모뿐 아니라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극한으로 치닫던 ‘추윤(秋‧尹)갈등’의 주요 순간들이 담겨있다.

“그런 일 하면 안되잖아요” 호통치던 변호사

“(‘청와대 울산 선거개입 의혹 사건’ 에 대해)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거에 위법하게 개입해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어떻게 방치하느냐”(『구수한 윤석열』)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구하기 수사’라고 했어요.” (『구수한 윤석열』)

책에는 윤 전 총장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에 대한 그의 내밀한 소회들이 동창들의 전언을 통해 담겨있다. 둘 다 살아있는 권력을 겨눠 여권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수사들이다.

동기들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조 전 장관 수사를 방치하면 정권에 막대한 타격을 줄 정도로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에 수사를 시작한 것이고,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정리해서 안정화하는 것이 총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을 때도 윤 전 총장은 “나라고 왜 편히 살고 싶지 않겠냐”, “내가 억울하다고 사사건건 반응하면 조직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위법이나 부당함에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는 의지인 셈이다.

책에는 고지식할 정도로 소신을 지키는 그의 성품을 유년 시절 일화로 소개하고 있다. 야구를 하던 초등학생 윤 전 총장이 참패할 상황이 되자 “야 임마,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다가 져야지, 이게 뭐냐?”고 말했다거나, 스케이트를 배울 때 10바퀴를 돌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힘들어서 숨어있다가 ‘다 돌았다’고 하는 교우들도 있었지만 혼자 눈물 콧물 흘리면서 선생님이 시키는 곧이곧대로 운동장을 돌았다는 일화다.

대학 시절에는 1980년 열린 모의형사재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가 오랜 기간 수배당한 이야기도 있다. 검사 임용 이후 잠깐 변호사로 변신했던 시절에도 윤 전 총장은 의뢰인에게 “그런 일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호통을 치는 통에 다른 변호사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유 시장주의자” 부친 윤기중 교수 영향

“오너가 회삿돈 빼돌려 사익을 추구한다는 건 중대범죄고, 자본주의의 기본을 흔드는 것이다.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구수한 윤석열』)

지난 2006년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를 밀어붙였던 윤 전 총장은 동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경유착 역시 시장 경제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강자들의 반칙 때문인 만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가치관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검찰 내에서 기업 범죄를 다룬 경험이 가장 많은 이로 손꼽히는 윤 전 총장은 대학 때부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지해왔다는 소신을 밝혀왔다는 것이 동기들의 전언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차려진 2021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차려진 2021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특히 그는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의 대표적 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2019년 검찰총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았던 책이다. 이 책은 ‘불완전한 시장이 불완전한 정부보다 낫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배경에는 아버지 윤기중 교수가 있다. 경제통계 분야의 선구자인 그는 자유주의 경제의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원칙주의자’ 학자라고 한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사석에서도 “나는 시장경제를 존중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석열의 진심』) 또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정치‧경제 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천명한 윤석열의 검찰총장 취임사에도 이러한 철학이 담겨있다고 한다.

“시위 전력이 앞길 막아서야” '진보' 김선수 대법관과 인연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냈고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선수(60·연수원 17기) 대법관과의 각별한 인연도 소개되어 있다.

동창인 김 전 대법관이 학생 운동 전력 시비로 사법고시 3차 면접에 떨어질까 봐 윤 전 총장이 소개해 죽마고우의 아버지인 당시 여당 핵심 실세인 이종찬 민정당 의원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게 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 자신은 이미 사시에 2번 떨어진 상태였는데도 1985년 김 대법관이 사법시험 17회에 수석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위 전력이 범죄인 것처럼 누군가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또 대학교 1학년 때 여학생이 사복경찰에게 부당하게 검문을 받자 윤 전 총장이 “대학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친 일화도 담겨있다. 동기들의 회고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이 갑자기 민중가요 대신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동요 앞으로)를 부르자 삽시간에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큰 불상사 없이 해산했다고 한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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