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피의 테러, 사라진 열 아이의 엄마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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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호 20면

세이 나씽-북아일랜드 살인의 추억

세이 나씽-북아일랜드 살인의 추억

세이 나씽

-북아일랜드 살인의 추억
패트릭 라든 키프 지음
지은현 옮김
꾸리에

북아일랜드 분쟁사 속에 녹인
영구 미해결 진 맥콘빌의 죽음

신념·도덕 사이 선택의 비극
스릴러 요소 두루 갖춘 논픽션

“모든 전쟁은 두 번 싸운다. 처음에는 전장에서, 다음에는 기억에서.”

이 책은 베트남계 미국인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말로 시작한다. 모진 전쟁의 기억을 다룬 이 논픽션에도 걸맞는 말이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지은이는 온통 초록빛 벌판인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핏빛 굴곡을 파헤친다. 대를 이은 증오, 피의 복수, 폭탄 테러, 납치, 지명수배, 탈옥 등 스릴러의 다양한 요소가 들어있어 논픽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은 20세기의 ‘깊은 상처’인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룬다. 1960년대 후반에 시작돼 30년을 끌었던 유혈 행진은 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으로 종식됐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영국 잔류를 주장하는 얼스터주의자 정당과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외쳤던 민족주의자 정당이 공동 운영한다. 21년 독립했던 아일랜드는 헌법에 아일랜드 섬 전체를 영토로 주장하고 통일을 지향했으나,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포기했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고통스럽지만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1960년대 중반 북아일랜드 여성 진 맥콘빌과 아이들. 그녀는 72년 납치된 후 숨진 채 발견됐다. 오른쪽 아래는 남편 아서. [사진 꾸리에]

1960년대 중반 북아일랜드 여성 진 맥콘빌과 아이들. 그녀는 72년 납치된 후 숨진 채 발견됐다. 오른쪽 아래는 남편 아서. [사진 꾸리에]

이 책은 여기까지 오기 위한 ‘장구한 행군’의 이면을 다룬다. 이 분쟁은 ‘저강도 전쟁’의 대표적 비극이다. 1840명의 민간인을 포함해 3500명 이상이 숨졌고 부상자는 4만7500명을 넘었다. 1000명 이상의 영국군과 경찰, 360명이 넘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관련 조직원, 반대편인 얼스터주의자(영국 잔류파) 단체원 160여 명이 포함됐다. 1만5000명 이상이 수감됐다.

분쟁의 시작은 흔히 72년 1월 30일 ‘피의 일요일’로 본다. 북아일랜드 북부의 데리(영국인들은 런던데리로 부름)에서 영국군이 시민권 운동을 벌이던 가톨릭 신자 26명에게 발포해 1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피는 또 다른 피를 불렀다. 이 사건은 IRA의 무장 투쟁을 가속했다.

여기까지는 공식 역사다. 하지만 지은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분쟁의 이면을 파헤친다. 책은 72년 12월, 10명의 자식을 키우던 진 맥콘빌이라는 38세 여성이 벨파스트에서 납치돼 사라진 사건으로 시작한다. 시신은 나중에 아일랜드에서 발견됐다.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북아일랜드판 ‘살인의 추억’이다. IRA는 평화협정 뒤인 99년 이 여성이 영국군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납치·살해했다고 시인했다. 무장투쟁은 비무장 아일랜드인을 표적 살해하는 ‘피의 테러’로 시작됐다.

지은이는 신념에 가득 찬 IRA 전사를 소개한다. 돌러스와 마리안 프라이스 자매다. 헌신성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다. 벨파스트에 살던 어린 시절, 아버지 알버트는 항상 ‘대의’를 이야기했다. 1916년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의 자유와 독립을 외치며 부활절 봉기를 일으켰던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알버트가 구술하는 ‘대하소설’의 서곡일 뿐이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애국자들의 전설의 무용담으로 열변을 토했고, 교수형을 당한 동지들에 대한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나무 주발과 도구로 폭발물을 혼합하는 안전한 방법도 조용히 알려줬다.

돌러스는 73년 3월 런던에서 자동차 폭탄을 터뜨렸다.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20년형으로 줄었다. 수감 중 북아일랜드 감옥으로 이감해달라며 208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고 교정 당국은 강제 급식으로 그를 살렸다. 7년간 복역하고 80년 출소한 돌러스는 유명한 아일랜드 배우인 스티븐 레이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지만 2003년 이혼했다. 10년 뒤 그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몸에선 독극물이 검출됐다. 사건은 미궁이다.

그해 7월 북아일랜드 경찰은 미국 보스턴 칼리지를 찾았다. 대학 역사학자들이 2001~2006년 돌러스와 동료들로부터 IRA의 활동에 대한 증언을 듣고 녹음한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서다. 이 자료가 맥콘빌 살해사건의 전모를 밝혀주고 IRA의 실체를 드러낼 것인가. 지은이는 이 과정들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신념과 도덕 사이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9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작가 세이머스 히니의 작품집 『노스』에 나온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무엇을 말하든,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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