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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콕 짚어 거명, 인권으로 때린 美 의회...숙제 받아든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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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017년 10월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대북전단 3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측으로 날려 보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10월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대북전단 3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측으로 날려 보냈다. 연합뉴스

 미 하원의 초당적 기구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개최한 청문회에서 미 의원들은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 등에 우려를 표하며 향후 한국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법 시행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냈지만,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미국의 인권 압박에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탈북자 북송, 공무원 피살 등도 거론

이날 청문회에서는 ‘문 정부(Moon government)’라는 표현이 수도 없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정부의 인권 관련 정책을 특정한 것으로, 사실상의 직접적 압박이었다. 내용이 전단금지법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증인으로 나선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한국 정부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탈북한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강제북송되고 있다”고 우려했고, 이인호 전 주러 대사는 지난해 발생한 서해상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언급하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를 비판하기도 했다.

톰랜토스 인권위 청문회 증인구성

톰랜토스 인권위 청문회 증인구성

외교부는 청문회 뒤 입장을 내고 대북전단법의 당위성을 다시 강조했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해 개정된 것으로, 법의 개정 취지에 부합하게 이행해 나갈 것”이라면서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 등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도 일관되게 기울여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도 반복했다.

외교부 “청문회 개최 사실 안다”고만

외교부는 또 “청문회가 개최된 것을 알고 있다”고만 했을 뿐 청문회 내용에 대해서는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 랜토스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제임스 맥거번 민주당 하원의원이 청문회에서 전단법 개정을 촉구한 데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회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문재인 정부의 인권 정책에 대한 증인들의 비판적인 진술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개진된 개별 참석자들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칫 법 개정에 대해서는 미국 의회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증인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입장이다. 2016년 1월 일본 자민당이 소녀상 철거 촉구 결의안을 처리했을 때 외교부는 “일본의 정당 차원 결의안에 대해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해 6월 경찰이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해온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자유북한운동연합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경찰이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해온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자유북한운동연합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외교부는 이런 입장도 기자단 전체에 배포한 게 아니라 문의하는 언론사에만 알려주는 식으로 대응했다.청문회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정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랜토스 위원회 공동위원장 “후속 조치”

하지만 추가 조치가 예상된다. 랜토스 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의원은 청문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따로 화상으로 만나 대북 전단 관련 청문회가 앞으로 더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6일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스미스 의원은 “우리는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첫 청문회는 관련 사안을 제기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자신은 이런 일들을 단 한 번에 끝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15일 밤(한국시간)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진행을 맡은 공동위원장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 연합뉴스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15일 밤(한국시간)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진행을 맡은 공동위원장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 연합뉴스

그의 이런 인식은 의회에서도 일부 공유하는 분위기다. 청문회에서 한국계인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은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책임을 묻고 더 잘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두 나라가 민주적 이상에 대해 책임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라 잭슨 리 민주당 하원의원도 “우리는 한국이 미국의 친구였다는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건설적인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맹이라고 해서 문제가 있는데 모른 척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추가적인 문제 제기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바이든 ‘가치 외교’ 어떻게 응답하나

정부가 일단 전단법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은 다시 확인했지만, 이런 미국의 우려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ㆍ미 정상회담이 다음달 말로 예정된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시하는 ‘가치 외교’ 강조에 어떻게 응답할지 입장 정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이번 청문회를 의회 일부의 목소리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오산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미 행정부의 입장은 이보다 더 강경하면 강경했지 전혀 결이 다르지 않다”며 “이미 국무부 수장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3월 한국에 왔을 때 인권을 맨 앞에 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입장 표명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북전단 살포 관련 주요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대북전단 살포 관련 주요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결국 법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실제로 이에 따라 기소되거나 처벌받는 사람이나 단체가 나오기 시작하면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가 일단 지난해 12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및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며, 법 적용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에 더해 대북전단 살포 관련 수사 중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 대한 재판 결과가 관련 여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전단금지법 청문회가 끝난 뒤인 16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통화하고 한ㆍ미 정상회담 등 현안을 논의했다. 이틀 전 상원 인준 절차를 끝낸 셔먼 부장관과의 첫 통화로, 한ㆍ미 동맹의 긴밀함을 강조하려는 성격도 있어 보인다.
유지혜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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