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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 아이 둘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택시운전사 부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13)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이다. 따뜻한 햇볕을 받아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옛 생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젊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몸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기다리지 않던 인생의 석양이 다가왔다.

결혼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기가 생겼다. 맞벌이 하는 관계로 아들이 태어날 때쯤 지인으로부터 40대 초반의 아주머니(우리 가족은 ‘이모’라고 불렀다)를 소개받아 아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개인택시 운전하는 이모네 부부는 친자식 이상으로 정성스럽게 키웠다. 3년 터울로 딸을 낳아 또 부탁하자 힘들다며 난감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 맡아줬다다. 1남 3녀의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 애 둘을 돌봐준 것이다.

택시가 쉬는 날에는 집안 행사나 가족여행 등 애들을 데리고 온갖 곳을 다녔다. 늦게 퇴근해 애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부족한 엄마·아빠를 대신해 장난감을 같이 만들고 숙제도 도와주어 구김살 없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모'라 부른 40대초반 아주머니가 딸에게 국수를 먹이고 있는 모습. [사진 조남대]

우리가 '이모'라 부른 40대초반 아주머니가 딸에게 국수를 먹이고 있는 모습. [사진 조남대]

체격이 건장하고 활달한 이모부와 음식 솜씨 좋고 사교적인 이모는 인기가 좋아 약방의 감초처럼 동네 행사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럴 때도 우리 애들을 데리고 다녀 주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작은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돌봄을 그만뒀지만 그 이후에도 부모 이상으로 따랐다. 이모 내외분의 생신이나 명절이면 선물을 준비해 방문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전화로 안부를 여쭙기도 한다. 그런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들이 모두 결혼해 이제 우리 부부가 손주 둘을 돌보자 ‘이모 내외가 그 당시 무척 힘들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고마운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옥상에서 딸을 업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이모'.

옥상에서 딸을 업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이모'.

이모 내외가 팔순에 접어들자 건강 이상 현상을 보였다. 얼마 전에는 이모가 폐렴으로 생사가 오락가락할 정도로 위중해 한 달 이상 병원에 계셨다. 이모부는 요즈음 공황장애 증상을 보여 바깥 출입을 못 한다. 한때는 집 주변 공원에 가면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인기가 좋아 이들을 챙기느라 용돈이 많이 든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침대에서 떨어져 타박상을 입었는데 병원에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생신을 맞아 방문했더니 지난날 우리 애들을 돌보면서 즐거웠던 일과 두 집안이 37년 동안 사이좋게 지내온 이야기를 반복해 말씀하신다. 오래된 일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외출이 어려운 데다 두 분만 외롭게 살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던 것 같다. 잘 적응하면서 지내야 할 텐데 걱정스럽다. 두 분을 뵙고 오니 마음이 편치 않다.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이모 부부의 사는 모습이 먼 훗날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불과 15년 후면 닥칠 일인데. 세월이 흐르는 속도가 자기 나이만큼 빨라진다는 말이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60대 중반이면 젊은이 눈에는 어르신으로 보일 텐데도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언제까지나 살 것처럼 말이다. 어릴 때 어른들이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제 조금씩 실감이 나기도 한다. 아직도 운동회 때 운동장을 힘껏 달린다거나 담장도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데 현실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

다행히 은퇴 후 하고 싶었던 글쓰기 공부를 시작해 3년 전에 수필가로 등단하고, 2년 과정의 사진 교육을 받아 지난해에는 회원들과 함께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이 어려워 지금도 화상 수업을 통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사진 촬영을 하고 싶다. 멋진 장면을 찾아다니다 보면 운동도 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일 것 같다. 또한, 걷지 못할 정도가 되더라도 생각할 능력만 있다면 글을 쓸 것이다.

여섯 살 생일을 맞은 딸이 '이모'로부터 선물을 받는 모습.

여섯 살 생일을 맞은 딸이 '이모'로부터 선물을 받는 모습.

올해 102세가 된 김형석 명예교수는 신문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살아 보니까 60세부터 90세까지가 가장 행복했으며, 그 시기에 사회적으로 열매를 맺었고 글도 더 잘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아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김 교수는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공부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쇠퇴해져 몸도 같이 늙어 버린다고 한다. 또한, 나이 들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봉사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켄터키주의 두메산골에 사는 ‘나딘 스테어’라고 불리는 85세의 할머니가 쓴 짧은 글 하나가 입으로 전해 오면서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간단한 복장으로 여행도 자주 다니고, 친구와 만나 먹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먹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수수한 소망인가? 앞서 삶을 산 선배의 충고를 새겨들어야겠다. 나도 20여 년 후면 이 할머니와 같은 나이가 될 텐데 소박한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모'가 딸을 안고 아들과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

'이모'가 딸을 안고 아들과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

은퇴 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 그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들었다는 것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요즈음에는 다르다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신체 나이는 어쩔 수 없어도 정신적인 젊음을 유지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배우고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지내야겠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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