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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노란리본 만든 이 남자, 지금은 가슴에 달지 않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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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많은 이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라왔던 이미지, 노란 리본. 매년 4월이면 떠오르는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다. 2014년 참사 당시 실종자들을 향해 '돌아오라'는 간절한 의미였던 이 노란 리본은, 끔찍했던 참사와 떠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 리본을 처음 만든 조용신(41) 진보당 공동 대표를 세월호 7주기를 맞아 인터뷰했다.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작했던 노란 리본. 첫번째 리본은 참사 직후 1~2주 사이에 만들어낸 디자인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2014~201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조 대표는 "일베가 리본 아래쪽을 변형하는 일이 발생해 리본 끝부분을 넓게 만들기도 했고, 디자인이 일원화하면 지루할 수 있어 붓으로도 그려보는 등 다양화해봤다"고 했다. 조씨 제공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작했던 노란 리본. 첫번째 리본은 참사 직후 1~2주 사이에 만들어낸 디자인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2014~201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조 대표는 "일베가 리본 아래쪽을 변형하는 일이 발생해 리본 끝부분을 넓게 만들기도 했고, 디자인이 일원화하면 지루할 수 있어 붓으로도 그려보는 등 다양화해봤다"고 했다. 조씨 제공

유방암 예방 '핑크 리본' 모양 따 제작 

조 대표는 세월호 참사 초창기에 노란 리본을 제작했다. 당시 통합진보당 당직자였던 그는 시민단체로 구성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에 참여했다. 조 대표는 “19일에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연대하게 됐다. 외국에선 노란 리본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의미로 쓰였다”고 말했다. 노란 리본의 이미지를 상징으로 쓰면서 그는 사실상 ‘공식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됐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고, 부모님 몰래 전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가 가로막힌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시절엔 친구들의 이름 알파벳을 그라피트 형태로 써주기도 했다. 고교 시절 친구들이 매점 햄버거를 사주며 써달라고 했던 솜씨였다. 그 손재주가 세월호 사고로 떠난 고교생 동생들을 기다리는 리본을 그리면서 발휘된 것이다.

7년 전 4월 16일, 아이들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 대학생들이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만든 노랑 나비가 화제가 됐다. 참사 후 첫 주말이 지나고 노란 리본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조 대표는 “유방암을 예방하는 핑크 리본 캠페인의 리본 모양을 본땄고 노란색을 입혀 만들게 됐다. 일베에서 아래쪽을 뾰족하게 만들어 잘못된 의미로 쓰는 일이 발생하다 보니, 이를 막고자 리본 아래쪽을 넓게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조 대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노란 리본을 만든 공식 디자이너였다. 함민정 기자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조 대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노란 리본을 만든 공식 디자이너였다. 함민정 기자

“모니터 속 아이들 눈을 보며 영정 만들어”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됐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고 했다. 조 대표는 세월호 3주기까지 공식 포스터도 제작했다. 2015년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각기 다른 크기의 사진을 받아 영정 액자에 맞게 모두 같은 크기로 맞춰 달라는 요청을 받아 밤새 편집을 했다.

“한 명씩 확대해서 눈을 보고 작업을 했다. 모니터 속에선 살아있고 웃음기 있던 표정인 아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괴롭고 잔인한 작업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당시 조용신 대표가 쓴 캘리그래피. 백씨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이듬해 사망했다. 조 대표는 격양된 분위기를 담아 이 문구를 썼다고 한다. 뉴시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당시 조용신 대표가 쓴 캘리그래피. 백씨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이듬해 사망했다. 조 대표는 격양된 분위기를 담아 이 문구를 썼다고 한다. 뉴시스

조 대표는 세월호 노란 리본 외에도 집회나 주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캘리그래피를 썼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시위 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이듬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우리가 백남기다’라는 문구를 썼다. 시위 당시 격양된 분위기를 글씨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송명숙 후보의 캐치 프레이즈 ‘강남해체’ 문구도 그의 작품이다. 조 대표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부족한 면이 있지만, 현장의 생동감을 글씨에 잘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세월호 울분과 우울감 해소 아직 멀어”  

세월호 참사는 조 대표에게 “사회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는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경찰과 군대 등이 나를 구하러 올 거라는 믿음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300명이 넘는 사람이 제대로 구조되지 않았다. 사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하면 ‘울분’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확산한 울분이 과연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언젠가 폭발할텐데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6년 촛불 집회가 확산하면서 국민이 일종의 위로를 받았겠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답답하다. 사회적 우울감이 해소되기까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15일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사진을 받아 같은 크기의 영정으로 편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조 대표는 ″잔인한 작업이었다. 희생자 한명씩 눈을 바라보다 보니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조씨 제공

2015년 4월 15일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사진을 받아 같은 크기의 영정으로 편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조 대표는 ″잔인한 작업이었다. 희생자 한명씩 눈을 바라보다 보니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조씨 제공

“진상규명으로 사회적 신뢰 높아져야”

세월호 참사를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안전을 위해 시위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한다. 그는 “정부가 정부 역할을 못 한 거다. 세월호가 보수나 진보 등 특정 정당 정치의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여야가 양쪽에서 이용했던 것 같다. 한쪽에선 세월호를 국민의 여론으로 모으는 데 이용하고, 다른 한쪽은 반대 여론으로 모으려고 했던 것 아닌가. 그 결과 아무도 유가족들의 말은 들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조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가족들은 이제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겠구나 생각했을텐데, 안타깝다. 허탈할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대로 기소권과 수사권을 주고 국가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런 식으로 국가가 신뢰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 국민은 정부가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릴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는지 등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가 세월호 참사 이후 제작했던 4.16연대의 로고다. 처음으로 썼던 캘리그래피라고 한다. 조씨 제공

조용신 진보당 공동대표가 세월호 참사 이후 제작했던 4.16연대의 로고다. 처음으로 썼던 캘리그래피라고 한다. 조씨 제공

7주기의 의미는 “회피하지 않는 것”

노란 리본을 만들었던 그는, 지금은 노란 리본을 달지 않는다. 참사 당시 괴로웠던 감정이 생생하게 들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 세월호 관련 일에 몰두하고 있다가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이 스스로에게 위선적으로 느껴지더라. 한동안 광화문 광장을 지나면 피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회피하지 않고 7주기를 돌아보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른바 ‘세월호 세대’라고도 불리는 20대에 대해선 “동년배가 배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서 사망한 걸 본 세대다. 생명이 정부 정치와 연결돼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만큼 이들을 무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대표는 “사회와의 관계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세대다. 그런 만큼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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