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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CPTPP 가입 신청,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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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최근 국내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관련 회의가 자주 열리고 있다. CPTPP 가입의 득실과 우리나라의 가입시기가 주로 논의되고 있다. CPTPP는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페루, 칠레,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높은 수준의 지역무역협정이며 2018년 말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CPTPP 회원국은 아니지만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9개국과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다.

‘FTA 경제영토’ 세계 3위로 확대 #새로운 미래 대외경제전략 필요 #무역질서 형성 과정에 참여해야 #CPTPP, 대외경제관계 발전 기여

우리나라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FTA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2002년 칠레와 사상 첫 번째 FTA를 체결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FTA 로드맵(road map)’을 만들었고 일본과 멕시코와의 FTA를 제일 먼저 추진하였다. 그러나 2003년 개시한 일본과의 FTA 협상은 농산물시장 개방에 대한 양국의 입장차이로 그 해 말 중단되었고 멕시코는 한국과의 FTA 추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무산되었다.

1980년대 중반 35% 수준까지 확대되었던 우리나라의 미국 수출비중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2010년 10%까지 떨어졌다. 당시 통상전문가들은 이를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 저하로 판단하고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미국과 FTA 협상을 추진했고 이어서 유럽연합(EU)과도 협상을 진행했다. 그 후로 정부는 한·중 FTA 등 다수의 FTA를 체결하여 현재 57개 국가를 대상으로 총 17개의 FTA를 이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FTA 상대국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소위 ‘경제영토’는 세계 GDP의 78% 수준으로 이는 칠레와 페루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세계 10위, 무역규모 세계 9위, 수출규모 세계 7위를 기록했다. 객관적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G10)’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부는 이제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는 대외경제전략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즉 단순히 수출시장 확보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계무역질서 형성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 국익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통상규범을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높은 수준의 지역무역협정에 가입하는 등 우리나라의 대외경제관계를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최근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과 CPTPP는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국영기업 등 새로운 통상 관련 분야에 대한 국제규범을 도입했다. 이들 지역무역협정의 회원국 대부분이 우리나라와 긴밀한 경제통상관계를 맺고 있어 새로 도입된 국제통상규범은 우리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지역무역협정이 중요한 이유는 ‘누적원산지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의하면 여러 회원국에서 생산된 원부자재를 사용해 상품을 만들어도 회원국으로 수출할 때 특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양자간 FTA를 맺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원부자재를 자국산으로 사용해 상품을 생산해야 상대국으로 수출할 때 특혜를 받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이 각각 CPTPP 회원국인 캐나다로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를 예로 살펴보자. 캐나다와 양자 FTA를 맺은 한국의 기업은 상품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의 원부자재를 한국산으로 사용해야 무관세로 캐나다에 수출할 수 있다. 반면 CPTPP 회원국인 일본의 기업은 상품생산에 들어가는 원부자재가 멕시코, 베트남 등 CPTPP 지역 내에서 생산된 것이면 무관세로 캐나다에 수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CPTPP 비회원국의 기업들은 원부자재 공급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추진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한일관계 개선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이 CPTPP 가입에 관심을 표명한 만큼 중국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다. 또한 미국의 CPTPP 가입추진은 어려운 국내문제들로 인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칠레, 싱가포르 등 주요 회원국들은 세계 9위 무역국이자 양자 FTA 파트너인 한국의 CPTPP 가입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은 국내적으로 다소 어려움을 줄 수 있겠지만 미래 대외경제전략 차원에서 훨씬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우리 기업이 새로운 국제통상규범에 대비하고 보다 더 유리한 환경에서 무역 및 글로벌 생산 활동을 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변상황까지를 포함한 여러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을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어 보인다. 최근에 영국이 정식으로 CPTPP 가입신청을 한 만큼 추가 회원국 가입절차가 곧 공식화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빠른 시일 안에 CPTPP 가입신청을 정식으로 통보하고 기존 회원국들과 가입협의에 들어갈 것을 기대해 본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