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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노병의 코로나 생존비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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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미국 매사추세츠 이스트브릿지워터에서 아주 특별한 코로나19 관련 기념식이 열렸다. 95세의 2차대전 참전 용사인 제임스 인가기올라가 코로나19에서 완치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조선소에서 배관공 일을 하던 그는 18세 때 해병 제3사단 3여단에 입대해 남태평양 전투에 투입됐다. 일본 남단 이오지마에 상륙해서는 그 유명한 수리바치 산의 성조기 게양 장면도 직접 봤다고 했다.

지난해 폐암 치료를 받기도 했던 그는 지난 2월 갑자기 탈수 증세가 나타나 인근 병원을 찾았다. 거기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번엔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코로나19는 두려운 상대였다. 그래서 가족들을 모두 불러 마지막 인사도 나눴다.

지난 2월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지난주 완치돼 병원에서 퇴원한 95세의 2차대전 참전용사 제임스 인가기올라가 자신을 위해 마련된 기념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타운 오브 이스트브릿지워터]

지난 2월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지난주 완치돼 병원에서 퇴원한 95세의 2차대전 참전용사 제임스 인가기올라가 자신을 위해 마련된 기념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타운 오브 이스트브릿지워터]

그러나 속으론 한 번 더 싸워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생을 파이터로 살아왔는데 이번이라고 포기할 순 없었다”고 그는 기념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직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사랑하는 이들은 11명의 아들·딸, 25명의 손자·손녀, 24명의 증손자·증손녀다. 조만간 여기에 한 명이 더 추가될 예정이다.

기념식 참석자들은 2차대전 생존자인 그가 코로나19라는 전투에서도 살아남았다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인가기올라는 보스턴글로브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특별히 영웅이 아니고, 그런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장에서도 자신을 죽이러 다가오는 일본군과 한 명씩 맞서 싸웠을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병상에 누웠을 때도 숨을 내쉬는 것에 충실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전투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전 세계 1억3000만 명의 확진자들 역시 코로나19라는 힘든 전투를 치렀다. 다 나았다고 생각될 즈음이면 다시 찾아오는 후유증과 아직도 싸우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확인되지 않은 외신 내용을 기정사실처럼 쓴 기사, 확진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듯한 이야기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자책,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등, 도처에 매복해 있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인가기올라의 기념식 연설은 단순하지만, 힘이 된다. 코로나19 같은 질병과의 전투는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95세의 노병이 몸소 다시 한번 전장에 나와 보여준 듯하다.

김필규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