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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라” “입구 낮아 택배차 못들어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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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 도로 진입을 막은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앞에 15일 오후 택배 물품들이 남아 있다. [뉴시스]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 도로 진입을 막은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앞에 15일 오후 택배 물품들이 남아 있다. [뉴시스]

15일 오후 3시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한 대단지 아파트 인근. 정문에서 350m가량 떨어진 상가 도보에 택배들이 구역별로 쌓여 있었다. 옹기종기 나뉜 택배 더미 사이에서 자기 택배를 찾으려는 주민들이 기웃대며 다가가면 대기하고 있던 택배 직원이 “어느 동에서 오셨냐”고 물으며 물건을 찾아 건넸다. 5000세대가 거주하는 대단지에 하루 동안 도착한 택배는 총 800여 개. 이 중 100여 개 남은 택배들이 주인들을 기다렸다.

‘택배대란’ 강동구 아파트 가보니 #입주자회 “지상배송, 아이들 위험” #택배노조, 집앞 개별 배송 중단 #울산선 시간 정해 지상출입 해결

아파트 측이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의 단지 지상 출입을 막자 개별택배가 중단되며 벌어진 ‘택배 대란’ 광경이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의 안전, 아파트 시설물 훼손 등을 이유로 지하주차장을 통해 택배 배송을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제한 높이가 2.3m인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저상차량이 필요한 상황. 저상차량이 아닌 택배 기사는 그동안 아파트 정문부터 손수레를 이용해 택배상자를 싣고 각 세대까지 배송해야 했다. 이에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측에서 전날 개별배송 중단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택배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아파트 내 택배 지상 출입금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4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다산 신도시의 한 공원형 아파트에서도 갈등이 빚어졌다. 택배 차량이 후진 중 아이를 칠 뻔한 사고가 발생하자 대책회의를 통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통제하면서다. 이후 국토교통부는 기존 ‘2.3m 이상’이던 지상공원형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높이 기준을 ‘2.7m 이상’으로 상향하는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번 고덕동의 아파트는 2016년에 건설을 시작해 바뀐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손수레로 물건을 나르는 모습. [뉴시스]

손수레로 물건을 나르는 모습. [뉴시스]

고덕동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도 찬반으로 엇갈린다. 택배 차량 통제에 찬성하는 측은 공원형 아파트로 만들어진 대단지 특성상 단지에서 산책하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많아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의견이다. 70대 주민 장모씨는 “아이들이 많이 뛰어놀고 있는데 택배 차량이 들어오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안전의 문제를 이야기한 건데 택배노조 측에서는 ‘입주민 갑질’ 프레임을 씌우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모(35)씨는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주민들 투표도 하지 않고 지상 출입통제를 시켰다”며 “단지 내 주행 제한속도만 지키면 사고 날 일도 없는데 시간이 금인 택배기사들이 수레까지 끌고 들어와서 개별배송하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택배 노조 측은 “개별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많이 오는 상황이라 일부 택배기사는 오늘 오전 중에 직접 배송에 나서기도 했다”며 “내일 다시 택배노조 측 입장을 정리해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갈등을 겪었던 아파트 중에는 시간대를 정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울산 남구 옥동의 한 아파트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 동안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가능케 하고 있다. 차량의 이동 속도를 10㎞ 이내로 제한하고 공회전도 금지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주민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마을 10단지에서는 주민들이 전동카트 2대를 구입해 택배기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동카트 관리비와 수리비도 주민들이 부담하고 있다. 입주민 커뮤니티 센터 등에 택배 보관소를 설치한 아파트들도 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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