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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또 법정관리, 왜…"SUV도 전기차도 경쟁력 없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법원이 쌍용자동차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한 15일 오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출고센터에서 차량이 나오고 있다. 쌍용차는 2011년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후 10년 만에 다시 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뉴스1]

법원이 쌍용자동차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한 15일 오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출고센터에서 차량이 나오고 있다. 쌍용차는 2011년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후 10년 만에 다시 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뉴스1]

법원이 15일 쌍용자동차에 대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쌍용차는 2011년 이후 다시 구조 조정과 파산 위기로 내몰렸다. 특히 쌍용차의 지금 상황은 처음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10여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해 있다. 자동차산업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지만, 쌍용차는 현재 차의 경쟁력도 내세울 미래 기술도 준비한 것이 없다. 한 때 체어맨 같은 명차를 만들고 코란도로 SUV의 명가로 불렸지만 인수하겠다는 사람도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결국 쌍용차의 운명은 계속기업가치(존속가치)와 청산가치 사이에서 내릴 서울회생법원 회생1부(부장 서경환 법원장)의 판단에 따라 회생 혹은 파산으로 결정된다.

코란도·체어맨 만들던 'SUV의 명가(名家)'

쌍용차는 1954년 설립한 하동환자동차가 모태로 77년 동아자동차공업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88년 현재의 쌍용자동차가 됐다. 국내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지프차 '코란도'를 주력 차종으로 판매했다. 97년에는 '대기업 사장님차'로 불린 첫 세단 '체어맨'을 출시했다. 벤츠 E클래스 언더바디를 기반으로 제작한 체어맨은 5년간의 개발 기간과 당시로선 파격적인 4500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했다. 이후 쌍용차는 외환위기 파고 속에 3조원까지 불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98년 대우그룹에 매각됐다. 하지만 1년 뒤 대우그룹마저 공중분해됐고, 회사가 채권단 손에 넘어가며 불운한 운명이 시작됐다.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됐지만 5년 뒤인 2009년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다.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돌연 철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첫 법정관리 사태였다. 상하이차는 인수 당시 "1조2000억원을 쌍용차에 투자하고, 연간 30만대까지 생산 규모를 늘리겠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상하이차는 투자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쌍용차의 연간 생산 규모는 15만대에서 9만대로 급감했다. 상하이차는 되레 쌍용차 대주주 자격으로 이사회 결의 등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 예산까지 받아 개발한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을 중국으로 가져갔다.

쌍용차, 법정관리 졸업 10년만에 다시 회생절차 돌입.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쌍용차, 법정관리 졸업 10년만에 다시 회생절차 돌입.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대우차→상하이차→마힌드라로 주인 바뀌어

쌍용차는 법정관리 중 첨예한 노사 갈등을 겪었다. 2009년 당시 인적 구조조정에 반대한 노조는 77일간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 파업'을 벌였다. 한상균 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64명이 구속됐고, 해고자 160여명을 포함해 모두 17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이때 쌍용차 사측과 정부는 파업 책임을 물어 노조에 손해배상 및 가압류 소송을 제기했고, 조합원과 협력업체 직원 등 30여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옥쇄 파업은 평택 지역의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쌍용차는 2010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이하면서 첫 법정관리를 마무리했다. 마힌드라를 대주주로 맞은 쌍용차는 2015년 3월 출시한 소형 SUV '티볼리' 효과로 이듬해 연간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흑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티볼리가 현대차 코나, 르노삼성 QM3, 쉐보레의 트랙스 등과 경쟁하는 가운데, AS(애프터서비스)나 후속모델을 통한 품질 향상 측면에서 뒷심 부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공개한 쌍용차의 티볼리 에어. 티볼리의 크기를 조금 더 키워 '패밀리 카' 수요를 겨냥했다. [사진 쌍용차]

2016년 3월 공개한 쌍용차의 티볼리 에어. 티볼리의 크기를 조금 더 키워 '패밀리 카' 수요를 겨냥했다. [사진 쌍용차]

쌍용차는 절치부심 끝에 2019년 신형 코란도를 출시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특히 'SUV의 명가' 소리를 들었던 쌍용차로서는 '디젤 게이트'(디젤차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가 치명타가 됐다. 티볼리 출시 때만 하더라도 디젤차 판매량이 휘발유(가솔린) 차량과 비슷할 정도로 인기였지만, 디젤 게이트 이후에는 고출력 엔진 기반의 가솔린 SUV 판매량이 늘어났다. 디젤 위주의 SUV에서 강세를 보였던 쌍용차는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경쟁 업체는 SUV 전기차까지 출시했지만, 쌍용차는 전기차는 커녕 SUV시장에서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지 못했다.

'올드 보이'의 경영…경쟁력 못 찾은 車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에 대응하기에는 쌍용차 경영진이 노쇠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사임한 예병태(64) 전 사장만 하더라도 사실 현대차 퇴직 임원 출신이다. 2009년 법원이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비서 출신인 이유일 전 사장을 쌍용차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한 이후, 쌍용차는 줄곧 현대차 퇴직 임원들이 이끌어왔다. 티볼리 출시를 이끌었던 마케팅본부장은 2018년 "현대차 출신들이 회사를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뒤 퇴직하기도 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쌍용은 다소 보수적인 시각에서 운영돼왔다. SUV 전문 브랜드를 자부했지만, 정작 세단보다 SUV가 많이 팔리는 시대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라며 "과감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라도 회사 전체가 군살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세대교체를 통해 전기차·자율주행 등 신기술뿐 아니라 디자인, 마케팅까지 회사 전체가 변화하고 있는 현대차 등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악화하는 쌍용차 실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쌍용차 사업보고서]

악화하는 쌍용차 실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쌍용차 사업보고서]

쌍용차는 이미 수차례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전력이 있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게 자동차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는 4494억원으로 2019년(2819억원) 대비 59%가량 늘었다. 지난해 기준 쌍용차 납품업체는 219곳으로 이들 업체가 쌍용차에서 받지 못한 납품대금도 2500억원에 이른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쌍용차 노사가 정부의 친노동, 친고용 정책에 너무 기댔다. 고용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쌍용차는 사기업이다"며 "50대 생산직을 위해 또다시 공적자금을 붓는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가만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적자금 투입은 국민 전체에 부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원칙론을 강조하며 12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쌍용차에 대해 단체협상 주기 연장(3년주기 교섭), 흑자 전환 때까지 무파업 등을 약속받아야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3년주기 교섭은 노·사·정 대타협 테이블에서 불발됐다"며 "다만 최대한 인내하며 매각 성공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는 "산업은행을 통한 공적자금 투입은 결국 국민 전체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자구 노력 없이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에만 기대어 회사를 존속하는 건 지속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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