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맡김차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맡김차림’은 일식에서 사용하는 ‘오마카세’를 우리말로 바꿔 부르는 말이다. 일본어사전에서 오마카세(おまかせ)는 ‘(사물의 판단·처리 등을)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 또는 ‘(음식점 등에서) 주방장 특선, 주문할 음식을 가게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풀이돼 있다. 외식업계에선 이 의미들을 합쳐 주방장이 그날 사온 최고의 제철 식재료로 요리한 메뉴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몇몇 미식가들 외에는 낯선 단어였던 이 말이 유명해진 건 몇 년 새 새로운 개념의 고깃집들이 등장하면서다. 쇠고기의 다양한 부위(사진)를 코스로 먹되 그날의 신선 부위와 조리법은 주방장 추천대로라는 뜻으로 ‘한우(쇠고기) 오마카세’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고 이후 삼겹살집, 카페, 한식당 등에서도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식당이나 언론이나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명료한 단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소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코스로 먹되, 그날의 신선 부위와 조리법을 셰프가 추천하는 새로운 컨셉트의 고기집이 많이 등장했다. [중앙포토]

최근 몇 년 새 소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코스로 먹되, 그날의 신선 부위와 조리법을 셰프가 추천하는 새로운 컨셉트의 고기집이 많이 등장했다. [중앙포토]

‘맡김차림’은 이렇게 두서없이 가져온 일본어 대신 우리말을 쓰자고 젊은층이 고안해낸 신조어다. 우리술 전문가로서 MZ세대 막걸리 열풍을 일으킨 ‘백곰 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한식과 우리술을 함께 소개하면서 오마카세라는 용어를 쓰는 건 경복궁 들어갈 때 기모노를 입는 것과 같다”며 “미식 수준이 올라갈수록 글로벌 용어가 많이 사용되는데 그 의미와 적용 사례가 맞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주방장(셰프) 특선’이라는 익숙한 표현을 썼다면 어땠을까. 촌스러워 보일까 젠체하느라 외식 전문 용어를 가져왔다가 길을 한참 돌아가게 됐다.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