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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후쿠시마 방류 결정,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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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오염수를 담아둔 대형 물탱크가 늘어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오염수를 담아둔 대형 물탱크가 늘어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이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공식 확정함에 따라 최인접국인 우리 국민의 건강과 환경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책임이 일본에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웃 나라의 정당한 우려를 해소하기는커녕 반대 의사를 묵살한 채 결정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패싱’ 속에서 방류 결정이 이뤄진 셈이다. 이 같은 일본의 처사에 다시 한번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사실상 일본 손 들어준 미국과 IAEA #정부 무능이 자초한 한국 패싱 아닌가

한국 정부는 이틀째 항의와 유감 표명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감 표명 이상의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 조치와 함께 제소하는 방안이 있긴 하지만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화와 희석을 거쳐 방사능 농도를 국제기준치 이하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일본의 발표에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며 사실상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일 뿐만 아니라 오염수가 섞인 바닷물이 해류를 타고 가장 먼저 도달하는 나라다. 그런 미국이 방류를 용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국제 공조를 통해 방류 계획을 철회시키기란 상당히 어려워졌다. 이대로 가다간 향후 방류가 강행될 경우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국제 검증 과정에서도 한국 패싱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인접국의 입장을 무시한 일본의 자세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한국 정부의 미흡한 대응과 무능이 이런 결과를 빚은 측면도 분명히 있다. 지난 2년반 동안 일본 정부가 치밀한 준비를 거쳐 방류 계획을 추진하고 IAEA까지 설득한 반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동향 파악에도 미흡했고 한국의 정당한 우려를 국제사회에 전파해 이슈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의 각의(閣議) 결정 직후 미국 국무부 장관과 대변인이 잇따라 일본 편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일본의 물밑 동향에 그만큼 어두웠다는 얘기다. 지난 2년반은 과거사 문제와 수출 규제 등이 얽혀 한·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였다. 국민 건강과 환경 안전이 걸린 문제에서조차 소통 채널이 충실히 가동되지 못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해양방류가 강행되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있다. 정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방류를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하는 것인지, 그런 목표를 관철시킬 수 있는 복안을 갖고 있는지 불투명하다. 정부의 대응은 단호하고 철저해야 한다. 동시에 방사능 유출과 같은 전문적 분야에서는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냉철함도 잃지 말아야 한다. 비과학적 괴담으로 과도한 공포심을 부추겨서도 안 되고, 정치적 의도로 반일 감정을 선동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치밀한 전략하에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