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울증 산재 판정뒤 2차가해…직장은 지옥이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14 05:00

저를 향한 괴롭힘은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방의 교대에서 일하는 30대 교직원 지영씨(가명)는 8년째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5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울먹였다. 공단 결정문에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및 상사와의 갈등이 상병(우울증)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혀 있었다. 지영씨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는 웃을 수 없었다. 현재 휴직 중인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한 적도 있지만, 홀로 외롭게 버티고 있다”며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1]

[뉴스1]

8년간 지영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영씨와의 인터뷰, 재해경위서와 업무상 질병 판정서, 노동위원회 결정문, 검찰 공소장 등을 바탕으로 지난 8년을 추적했다.

“개 같은 X” 

지영씨는 지방의 한 교대에서 2년 동안 사무계약직으로 일하다 2012년부터 입학사정관 업무를 맡았다. 입학관리처의 각종 업무를 맡았다. 2014년 무기계약직이 됐다. 2012년 2월 첫 출근 때 지영씨는 입학관리팀장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너는 학사고 다른 직원들은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입학사정관이라 말하고 다니지 마라.” 그것이 괴롭힘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료 pixabay, 제작 조혜미]

[자료 pixabay, 제작 조혜미]

이후 팀장은 지영씨에 대해 “채용하고 싶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을 하며 “나쁜 X, 개 같은 X” 등의 욕설을 했다고 한다. 다른 직원들에게도 지영씨와 접촉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지영씨를 피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지영씨는 괴롭힘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 이외에 육체적 스트레스도 늘었다. 다른 직원들의 업무가 하나둘 떠넘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배제해야 해”

팀장은 자신의 박사과정 소논문 편집 등을 지영씨에게 시켰다. 2017년 10월엔 입시 성적 조작 지시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팀장의 부당한 지시는 지난달 기소된 팀장의 공소장에 담겼다.

‘입학관리팀장은 2017년 10월 지영씨에게 ‘중증장애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2018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에 지원한 시각장애 지원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서류평가에서 떨어지게 하거나 재평가를 받게 할 것을 지시했다.’ (공소장 요지)

검찰은 지난달 B씨를 위계공무집행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연합뉴스]

검찰은 지난달 B씨를 위계공무집행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연합뉴스]

검찰은 “팀장은 위계로서 2018년 전형을 위한 학교의 입학 사정 공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피고인이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지영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지난달 26일 팀장을 기소했다. 지영씨가 학교 측과 싸우는 과정에서 과거의 의혹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었다. 팀장은 “학업과 임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서로 협의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팀장과의 다툼 학교는 뒤늦게 알아”

직장 내 괴롭힘과 입시 조작 의혹 등에 대해 대학 측은 13일 “두 분 다툼은 개인적인 문제다. 학교 측도 뒤늦게 수사에 협조하면서 당사자 간 다툼과 부당한 행위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지영씨는 “2019년 5월 학교 측에 관련 문제 제기를 했다”고 주장한다. 학교 측은 “사건 당시에는 즉시 신고나 보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팀장이 입시 관련 문제가 있다는 것도 팀장이 퇴사한 이후에야 문제를 제기해 학교는 따로 조치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입장이다.

우울증, 노동위, 검찰, 인권위…

[중앙포토]

[중앙포토]

지영씨의 우울증은 검찰 수사 한참 전부터 있었다. 팀장의 괴롭힘으로 2018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이후 대학과는 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19년 6월 대학에 6개월 질병 휴직을 신청해 인정받았다. 이후 3개월의 추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진단받아 3개월 연장을 신청했지만, 학교 측은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지영씨는 요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학교에 결근했다. 이 때문에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영씨에 대한 업무상 질병을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요양보험급여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학교 측은 질병휴직 연장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지영씨에게 진단서 이외 진료기록부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담 기록 등에 민감한 정보가 담겨있다는 이유로 지영씨는 이를 거부했다. 학교는 질병휴직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 지영씨는 다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진단서 이외 진료기록부 제출을 요구한 것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지영씨와 학교 간의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 다툼에서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 중노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지 않은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병가신청을 불승인한 과정이 부당하다고만 보기 어렵고, A씨가 무단결근에 이른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학과 ‘2차 가해’ 갈등

이후 2차 가해가 시작됐다는 것이 지영씨의 주장이다. 학교는 매년 초 각 부서의 주요업무실적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중노위가 학교의 손을 들어준 것을 ‘성과’로 판단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지영씨의 실명과 병명, 그동안의 사건 등이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문서에 공개됐다.

학교 측은 업무실적보고서에서 “근로자 구제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의 기각판정을 이끌어냈다”고 성과로 적었고, “공단의 산재승인이 없었다면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이 불가능했던 점을 고려할 때 산재 조사 시부터 적극적인 대응을 못 한 점”을 미흡했다고 꼽았다. 지영씨는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학교가 작성한 연간업무실적자료로 전직원들이 열람할 수 있다. [해당 자료 캡쳐]

학교가 작성한 연간업무실적자료로 전직원들이 열람할 수 있다. [해당 자료 캡쳐]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지영씨는 자신의 업무상 질병과 산재를 대하는 태도에 복직을 망설이고 있다. 산재보험법 116조는 사업주의 조력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벌칙 조항은 없지만, 보험급여 등 절차를 도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법은 지영씨를 돕고 있었지만, 그의 외로운 싸움을 끝내 주지는 못했다.

지영씨는 가해자인 팀장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고 했다. 검찰은 팀장을 재판에 넘겼지만, 사과는 받지 못했고 팀장은 이직한 상태다.

“기계적 대응. 상처 줄 의도 없었다”

대학 관계자는 업무실적에 지영씨 사건이 기재된 것과 관련, “신상을 드러내거나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담당자가 기계적으로 실적으로 적었고 보고서 뒷부분이라 제대로 확인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작성 담당자는 “업무를 맡은 지 반년도 안돼 내부 보고 자료로 알고 작성했다. 담당 업무를 적은 것일 뿐, 성과로 내세우거나 산재에 부정적 인식을 담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중노위가 학교 손을 들어준 건 산재 승인 이전에 무단결근을 한 것이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괴롭힘 전 일상을 회복하고 싶어”

[사진 pxhere]

[사진 pxhere]

직장갑질119 대표인 권두섭 변호사는 “업무상 질병이 확인될 정도면 회사는 괴롭힘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따라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그에 따른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자는 산재 신청에 협력할 법적 의무가 있다. 산재 은폐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했다는 취지의 표현은 이에 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현행법은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추상적이고 처벌규정이 없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과태료 정도의 제재는 해야 실효성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영씨의 바람은 하나였다. 우울증에서 회복한 뒤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홀로 고립된 채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에 맞서 홀로 전쟁터에 서 있는 그의 싸움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8년 전, 괴롭힘이 있기 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그의 소망은 이제 욕심이 되어버린 것일까.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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