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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스파이의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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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1940년 일본 고베가 배경이다. 일본군이 중국과 동남아로 진격하며 온 나라가 환호하던 때다.

무역상회를 운영하는 유사쿠는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자유주의자다. 국가의 권고에도 아랑곳 않고 국민복 대신 고급 양복을 입고, 일본술 대신 외국산 위스키를 즐겨 마신다. 염려하는 아내 사토코에게도 “바보같은 지시는 따르지 않겠다”고 대꾸한다. 사업차 갔던 만주에서 일본군의 생체실험을 목격한 그는 이를 전 세계에 알리려 하고, 사정을 모르는 아내와의 갈등도 고조된다.

역지사지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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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쟁으로 인해 파탄을 향해 가는 가족, 이들을 둘러싼 주변 관계, 그리고 전체주의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극적으로 풀어간다. 생체실험에 대한 부분도 어설프게 피하지 않는다. 흑백으로 된 각종 기록필름이나 노트 등을 통해 참혹한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를 제작한 것은 일본의 공영방송 NHK다. 소재가 워낙 민감하다보니 투자에 난항을 겪었는데, NHK가 나서면서 겨우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예산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아오이 유우를 비롯해 다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사사노 다카시 등 일본에서 내로라 하는 스타들이 출연했다.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높았을 때도 ‘평화 헌법’이 흔들리지 않고 지켜진 것은 일본 사회에 이런 저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는 부끄러운 역사를 응시하고 전쟁을 혐오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또 하나. 극장을 나오며 이 정도의 공영방송이라면 수신료의 가치가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