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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고픈 복제인간 박보검, 유한한 삶의 의미를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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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국 상업영화 최초의 복제인간 SF ‘서복’(감독 이용주)은 공유·박보검 두 톱스타의 브로맨스 호흡이 빛난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한국 상업영화 최초의 복제인간 SF ‘서복’(감독 이용주)은 공유·박보검 두 톱스타의 브로맨스 호흡이 빛난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이토록 지켜주고 싶은 복제 인간이 있을까. 노아의 방주 같은 선박 안에서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져 평생 살아왔다. 판옵티콘 같은 감시체계 속에 주사 맞고 식사하고 책 읽고 ‘멍 때리는’ 게 24시간의 전부다. 인공바다를 보며 살던 그에겐 뭍에 내려 처음 접한 수족관 물고기, 국밥 먹는 노인, 컵라면·운동화 등이 신세계다. 불로불사의 신비에 앞서 ‘산다는 것’의 신선한 의미를 깨우쳐 주는 이 소년에게 누구라도 보호 본능을 느끼지 않을까. 오는 15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는 한국형 SF영화 ‘서복’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서복이다.

내일 티빙·극장 동시개봉 SF ‘서복’ #특수요원 공유와 브로맨스 눈길 #CG 활용한 스펙터클 액션 볼거리

“첫 영화 ‘불신지옥’(2009)의 테마가 두려움이었는데, 그걸 더 확장해보고 싶었다. 죽음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아우르다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까지 도달했다. 기본적으론 대조적인 두 남자가 동행하는 과정을 통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려 했다.”

감성 청춘영화 ‘건축학개론’(2012)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이용주 감독의 말이다. 지난 12일 ‘서복’ 시사 후 언론 간담회 발언에 따르면 서복은 “인간이 지닌 두려움과 욕망을 응축시킨 캐릭터”다. 잠도 자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무지막지한 염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뱀파이어 같은 불사의 존재. 국가 기밀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그를 안전지대로 옮기는 특수 임무를 맡게 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은 시한부 암 진단을 받고 고통을 겪는 중이다. 실험체 서복의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생명 연장을 바라게 된 기헌이 정체 모를 세력들의 추격 속에 서복을 보호하다 오히려 그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이야기다.

주목할 건 영화 배경이 2019년이란 점. 애초부터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1982)와 같은 암울한 미래 사회의 인류 얘기가 아니란 거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 이후 서구에서 끊임없이 변주돼온 인조인간 소재를 활용하되 현재 한국 사회가 던질만한 질문들을 버무렸다. 바이오공학 발달 시대에 누구나 욕심내는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무언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 등이다. 서복은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러 동쪽으로 떠났던 신하 이름에서 왔다.

“할리우드 마블 영화식의 장르물로 보일까 봐 걱정”이라는 감독과 별개로 영화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외피에 두른 탈주극 로드 무비에 가깝다. 극 초반 수송 트레일러를 습격한 세력에 맞서 기헌과 서복이 도망치는 장면부터, 총격 및 염력 액션, 탱크가 등장하는 마지막 전투 장면까지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한 스펙터클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미술상 후보에 오른 이하준 미술감독이 구현한 비밀 실험실과 최첨단 장비의 안가 등 특수공간도 볼거리다. 초반 새장에 갇힌 새를 비추던 영화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바닷가에서 소용돌이치듯 날아가는 물새 떼를 비출 땐 탁 트인 해방감도 안긴다.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사는, 어린아이 같은 무공해 인조인간을 연기한 박보검이 순도 높은 크리스탈 매력을 선사한다. 쳇바퀴 도는 일상이 그를 만들어낸 ‘엄마’의 기획이란 점에서 목표 없이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동일시할 캐릭터이기도 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무표정 프로바둑기사 택이를 연기한 박보검이 처음엔 공유를 “민기헌씨”라고 부르다가 “형”이라고 부르기까지 아슬아슬한 ‘꽁냥꽁냥’이 또 다른 볼거리다. 마치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공포의 뱀파이어를 청소년 로맨스물로 흡수했듯,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MZ세대 관객 입맛에 맞게 ‘브로맨스’에 활용한 느낌. 다만 두 톱스타의 탄탄한 연기와 호흡 덕에 ‘팬픽 순정만화’로 전락하지 않고 114분 러닝타임 내내 무게감을 붙들고 간다.

“낯선 존재인 서복을 기헌이 이해하고 연민하는 과정에 관객이 동참하길 바랐다”는 이 감독의 말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인 서복이 전혀 관객에겐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채로운 지점. 생체 과학기술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 극복된 21세기 자신감의 반영일까. 돼지 장기 실험 등 바이오공학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시대에 ‘그 기술을 누가 쥐느냐’하는 권력 싸움이 키워드로 깔린 이유다. 하지만 복제인간을 만든 세력이 추적장치 하나 활용하지 못하는 넌센스가 극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지난해 개봉 예고했던 ‘서복’은 코로나19 사태로 몇 차례 연기 끝에 OTT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한다. 북미에선 디즈니의 ‘뮬란’ 등도 이랬고, 넷플릭스 영화도 몇 차례 극장 개봉한 적 있지만 국내 대형 상업영화의 이런 시도는 처음. 특히 ‘사냥의 시간’ ‘승리호’ 등 대작들을 먼저 확보한 넷플릭스에 대항해 국내 1위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토종 OTT와 손잡은 게 눈에 띈다. 티빙은 애초 CJ ENM의 OTT 서비스였다가 올 1월 JTBC스튜디오와의 합작법인으로 출범했다. 향후 3년간 4000억원 이상의 제작비 투자로 오리지널 콘텐트를 확보한다는 계획. ‘서복’은 오리지널 첫 영화로 티빙 측은 국내외 OTT 시장의 절대 강자 넷플릭스와 연내 상륙 예정인 디즈니플러스에 맞서 구독자 증가를 노리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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