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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내 원고 본 스승 황순원 불쑥 '너 연애 못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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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사진 한수산]

[사진 한수산]

“너 연애 잘 못 하지?”

12년 만에 산문집 낸 한수산 #영혼의 표상 된 예술가, 스승, 가족 #면도칼로 오리듯 포착한 장면 담아 #『군함도』 후속작은 천주교 순교사 #내 마지막 의무…90년대부터 취재

작가 한수산(75·사진)은 경희대 영문과 3학년 시절 화요일마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당시 경희대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지난주 드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새로 쓴 작품을 놓고 오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그 소설 원고 이야기를 하다 말고 황순원 선생이 불쑥 말했다고 한다. “연애를 잘 못 하니까 이런 소설을 쓰는 거야.”

이런 솔직한 고백, 정확한 기억은 최근 출간한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앤드)에 계속 이어진다. 황순원 선생 댁으로 찾아갔을 때 원고가 펼쳐져 있던 검정 앉은뱅이 밥상, 하도 많이 고쳐 새카맣던 원고도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글은 쓰는 게 아니다. 고치는 것이다”는 문장을 끌어낸다.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수산은 “장편이 마라톤이면 단편은 넓이뛰기”라고 했다. 바닥에서 떠 있는 그 짧은 순간을 도려내듯 그려야 한다. 그는 “젊은 날 내 영혼에 표상이 된 예술가들, 스승, 가족의 이야기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기억 속에서 면도칼로 도려내듯 포착한 장면”이다. 황순원 선생 뿐 아니라 못생기고 굼뜬 민물고기 뚝지를 닮은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억, 사랑하는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를 찾아 떠난 뉴욕 여행의 이야기, 턱수염을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길러 ‘이방’을 떠올리게 했던 아들의 모습까지 그려냈다.

긴 세월 기억의 짧은 글들이 독특한 까닭은, 한수산이 호흡 긴 작가로 유명해서다. 1989년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을 접한 이듬해부터 자료를 모으고 취재해 2016년 두 권짜리 장편  『군함도』(창비)를 냈다. 일제시대 악명 높은 ‘군함도(하시마·端島)’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이야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27년을 들여 작품을 완성했다. 이 밖에도 소설  『부초』  『유민』  『욕망의 거리』 등 장편의 미학을 인정받고 오늘의작가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은 작가다.

한수산은 “책으로 엮은 산문은  『순교자의 길을 따라』(2009년) 이후 오랜만”이라며 “일흔을 넘나들게 되면서 지난 세월을 좀 이야기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글감을 메모해둔 폴더를 이번에 열었다. “‘종교’ ‘집’ ‘꽃’ ‘사람’ 등 수십종으로 분류해 놓은 메모가 있다.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아니고 내 문학 작품의 사상적 토대를 그려내는 작업이다.”

그는 ‘수필’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산문을 변호했다. “수필은 신변잡기, 자기옹호가 아니다. 면도칼로 오려낸 부분을 그려내면서 전체를 떠올리도록 해야하는 글이다.” 장편 소설 작가에게 짧은 글이 얼마나 쉬운지 누군가 물을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히말라야나 남산이나 올라갈 때 숨 가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는 과정은 길이에 상관없이 만만치 않다.

“일흔은 무엇이든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나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산문집이 젊은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내가 살아낸 젊은 날의 이야기들이 그래도 울림이 있는 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출판사에 초고를 보내며 “가차 없이 체크해달라”고 했고 젊은 편집자가 “재미없다”고 하는 부분을 전부 들어냈다고 한다.

한수산은 이제 장편으로 돌아간다. “수십 년 가슴에서 갈아온 작품들이 있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를 쓰려 1990년대에 취재를 시작했다. 마카오, 필리핀, 중국 두만강까지 헤매고 다녔다.” 그는 “독자를 향한 마지막 의무를 다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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