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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린이청(廳)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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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서울에선 평범한 아파트촌에 살았다. 덕분에 단지 안에 어린이집이 여럿 있었고 빈자리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등·하원이 문제였다. 오전 9시에 등원을 해 오후 3시쯤엔 하원을 해야 했다. 규정은 그렇지 않았는데 대개 오후 3시쯤이면 남아있는 아이들이 없어,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맡아줄 손이 없어 딱 한 번 오후 5시쯤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용변 처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다시는 아이를 늦게(?)까지 맡기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는지, 여하튼 대부분의 워킹맘은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에 ‘시터 이모님’ 등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어린이집의 등·하원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반면 도쿄의 어린이집(보육원)은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맡아줬다. 긴 시간 아이들을 맡기는 것도 못 할 짓이었지만 기댈 곳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토요일에도 어린이집 문은 열려있었다.

글로벌 아이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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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어린이집은 맞벌이 가정에 우선권을 줬다. 그 밖에 사정(가족 병간호, 임신·출산 등)이 감안돼 순서가 매겨졌다. 자리가 나기까지 1년 정도 기다렸던 게 함정이었지만, 최근 어린이집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집에서 돌봐줄 사람이 있으면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을 보내면 된다. 유치원은 오후 2시~5시 사이에 하원을 하고, 보육이 아닌 교육기관이라 되려 선호하기도 했다.

보육료는 각 가정의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매겨졌다. 1년에 1번 소득세 증명서와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9년 10월 아베 정권의 보육무상화 정책으로 모두 무료가 됐다.

일본 자민당은 최근 올가을 총선 공약으로 어린이 문제를 총괄하는 ‘어린이청’을 만들겠다고 했다. 어린이집 부족, 아동학대, 저출산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있는 정책을 한 곳에서 지휘하겠다는 취지다. 자민당 젊은 의원들의 공부모임에서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선거용이다. 청을 만든다고 해결되냐”라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아예 부 단위로 만들자”는 논의로도 이미 확산하고 있다. 논의는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다만, 최소한 정권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문제를 정책의 중심을 두겠다는 의지는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는 네거티브가 난무한 최악의 난장판이었다. 인구의 25%가 집중해 있는 대한민국 제1, 2의 도시의 수장이 아이 키우는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일본 출생률은 1.36명(2019년), 한국은 0.84명이라는 현실을 똑바로 봤다면 말이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