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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시설 의문의 정전 사고…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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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이 ‘이란 핵 합의(JCPOA)’에 복귀하기 위한 당사국 회의가 열리는 시기에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에서 의문의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이란 측은 “비열한 테러행위”라고 비난했고, 이스라엘에선 자국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가 개입한 사이버 공격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스라엘 언론 “모사드 사이버 공격” #이란 측 “비열한 테러행위” 비난

지난 11일 이란 국영 프레스TV와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란 원자력청의 베흐루즈 카말반디 대변인은 “나탄즈 지하 핵시설의 배전망 일부에서 정전사고가 있었다”며 “방사능 오염이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고가 우라늄을 농축하는 지하 원심분리기와 관련한 내부 전력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한 대형 폭발과 함께 발생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0일 이란 정부는 자국의 ‘핵 기술의 날’을 맞아 나탄즈 핵시설에서 개량형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는데, 바로 다음 날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영 칸 라디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나탄즈 원전 공격은 모사드가 관여한 이스라엘의 사이버 공격”이라며 “피해는 이란이 밝힌 것보다 더 크다”고 보도했다. NYT도 익명의 이스라엘 관리를 인용해 “이번 폭발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며 “나탄즈 핵시설을 복구하는 데 최소 9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나탄즈 핵시설에선 지난해 7월에도 폭발사고가 발생했으며, 당시 이란 정부는 ‘외부의 사보타주(의도적 파괴행위)’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사고에 대해 “10년 이상 중동 전역에서 ‘그림자 전쟁’을 벌여온 두 적국(이란·이스라엘) 사이에 발생한 최신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이 미국의 JCPOA 복귀 시도에 제동을 걸려는 이스라엘 측의 사보타주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NYT는 “핵 합의에 복귀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새롭게 불확실성을 더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는 미국의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기 몇 시간 전에 발생했다. 이날 오스틴 장관은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베니 간츠 국방부 장관과 만나 “지속적이고 철통 같은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헌신”을 재확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앞서 2015년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에 독일을 더한 주요 6개국은 핵 프로그램 동결과 경제제재의 단계적 완화를 골자로 하는 JCPOA를 끌어냈다. 하지만 2017년 출범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 개발을 계속한다며 2018년 5월 합의에서 탈퇴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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