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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현판식 後 80일, 수사는 0…김진욱 "시간은 우리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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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12일 “앞으로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자문위원회(위원장 이진성 전 헌법재판소장) 첫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서다. 1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현판식을 한 뒤 80일이 지났지만 검사·수사관 인선을 덜 끝내 1호 사건 수사도 착수하지 못한 채 낙관론만 펼친 셈이다.

김 처장의 말처럼 공수처가 신뢰받는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공수처는 그 사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에 이규원 검사 명예훼손 사건 뭉개기까지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면서 황제 조사 논란의 여파로 김 처장 본인과 여운국 차장을 비롯한 공수처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고발장만 쌓였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긴급 출국금지 의혹을 최초 제보한 공익신고인이 김 처장 등을 연이어 고발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행사, 직무유기 등 그 혐의도 다양하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2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2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이들 고발의 공통점은 지난달 7일 이성윤 지검장 면담에서 공수처의 ‘관용차 에스코트’와 황제 조사 논란에서 파생했단 점이다. 이 지검장은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1차 수사를 무마시키는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7일 당시 이 사건은 공수처 관할이었다. 공수처가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로 사건을 재이첩한 건 그로부터 닷새 뒤인 지난달 12일이었다.

김 처장과 이 지검장의 면담은 이 지검장 변호인의 면담 신청이 계기가 됐지만, 변호인에 더해 피의자인 이 지검장을 직접 부른 건 김 처장이었다. 김 처장은 당시 김모 비서관에게 지시, 정부과천청사 인근 골목길에서 이 지검장을 자신의 제네시스 관용차(1호차)에 태워 공수처로 데려오도록 했다.

면담 내용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논란이 커지자 공수처는 “청사 출입이 가능한 관용차가 2대 있었는데 2호차는 체포피의자 호송(용)으로 피의자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뒷좌석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차량이었다”는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그런데 2호차는 ‘공수처 공용차량 운영규정’이 규정한 범죄수사용 승합차가 아니라, 여운국 차장도 사용한 이력이 있는 업무용 쏘나타 승용차였다. 김 처장은 지난달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지검장 면담에 대해 “수사를 했다”고 설명했었다. 이에 공수처는 출범 초 인력·장비가 부족한 특수한 상황에서 2호차를 임시 호송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보도설명자료에 허위사실이 적힌 건 명백해 보인다. 호송용이 아닌 차량을 호송용으로 사용했으니 호송용 차량이라는 건 ‘호송차 호소인’ 밖에 더 되느냐”고 꼬집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지난달12일 오후 과천정부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1차 인사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 김 처장과 여 차장 모두 판사 출신으로, 수사기관 종사 경력이 없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지난달12일 오후 과천정부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1차 인사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 김 처장과 여 차장 모두 판사 출신으로, 수사기관 종사 경력이 없다. 연합뉴스

이날 “시간은 우리 편”이란 김 처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내 편 네 편이 있다는 말은 수사기관장의 발언으로 적절하지 않다”(법조계 관계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출범 후 제기된 숱한 논란은 대부분 공수처가 자초한 일이었다. 처장·차장 외 수사검사가 전무하고 범죄수사용 차량이 없는 상황인데도 수원지검이 이첩한 사건을 9일간 갖고 있었고, 그 사이 피의자(이 지검장)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만난 뒤 “여건이 안 된다”며 재이첩하는 과정에서 탈이 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가 지난달 17일 공수처로 이첩한 이규원 검사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이 검사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소속으로 허위작성 의혹을 받는 소위 ‘윤중천 보고서’의 작성자다.

현직 부장검사는 “검사 면접 일정 때문이라면 여건이 안 되니 빠르게 재이첩을 해야 했다.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신속한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아직 수사 실무와 관련한 훈령·예규도 완비하지 못했다. 이성윤 지검장 사건을 검찰에 다시 넘길 때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라 “수사 후 공수처로 송치해 달라”고 요구해 검찰과 갈등 구도를 만든 것도 공수처였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의 좌충우돌은 ‘검찰개혁’ 성과에 목마른 여권의 조급증 때문이란 뒷말까지 나온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공수처 연내 출범”을 외치면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 요건을 완화하는 공수처법 개정(12월 10일)을 밀어붙였고, 지난 1월 김 처장의 ‘나 홀로 출범’을 기념하는 현판식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이 참석했다. 추 전 장관이 당시 축사에서 "이날이 언제 오나 조마조마한 순간이 많았다. 많은 분이 걱정의 날밤을 보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사를 다 뽑고 준비를 완료한 다음 출범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텐데,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다 신뢰만 깎아 먹었다”고 말했다.

하준호·정유진·김민중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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