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은 고유정 사건, 김태현은 세모녀 사건?" 사건명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1.04.12 05:00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불쌍한 세 모녀가 사건 이름에 꼭 나와야 할까요.”

지난 23일 서울 노원구에서 김태현(25)이 스토킹하던 여성과 그의 여동생 그리고 두 자매의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명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속적인 스토킹으로 살인을 저지른 김태현의 신상이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세 모녀 사건'이 아닌 '김태현 살인사건' 또는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기존의 사건명이 피해자에 초점 맞추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범죄와 가해자를 중심으로 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지난 5일 김태현의 신상공개를 할 당시 이번 사건을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이라 칭했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노원구 사건’, ‘세 모녀 사건’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자 이런 명명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 중심의 사건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원구 세 모녀 사건 X,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 O'

노원구 김태현 살인사건에 대해 SNS에서는 사건명을 두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SNS캡쳐

노원구 김태현 살인사건에 대해 SNS에서는 사건명을 두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SNS캡쳐

인터넷과 SNS에서는 검색어 정화 운동도 벌어졌다.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이 아니라 ‘김태현 살인 사건’을 사용을 장려하는 운동이다. 검색어 목록에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을 지우겠다는 취지다.

SNS에서는 “살인한 가해자의 이름도 공개됐는데 왜 아직도 ‘세 모녀 사건’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세 모녀 살인사건은 ‘세 모녀가 죽였다’는 뜻처럼 보인다.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된 상황에서 범죄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가해자 이름으로 붙여야 한다” 등의 주장이 올라왔다.

“피해자 인권이 무조건 우선”

과거 사건을 예시하며 사건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도 나왔다. 직장인 이모(28)씨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고유정사건’을 기억한다. 그때처럼 피의자의 이름과 죄목이 드러난 상황에서 굳이 ‘노원구’라고 밝힐 필요도 ‘세 모녀’라고 특징지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이름을 이용한 사건과 법안 이름을 수동적으로 접하던 네티즌들이 ‘피해자의 이름을 꼭 써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효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인이법, 정인이 사건, 민식이법, 김용균법 등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사건은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를 빠르게 시키는 장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법안의 경우 본질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상징에 치우치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또,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과 사건이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늘 제기됐다.

“가해자의 잘못된 영웅 심리 부추길 수도”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사건 당일인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PC방을 나서고 있다. 독자 제공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사건 당일인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PC방을 나서고 있다. 독자 제공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현재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 보호에 과하게 치중되어 있어 신상공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런 움직임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피해자의 인권 보호는 무조건적으로 우선 되어야 한다.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피해자가 아닌 사건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피해자의 인권 존중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숨을 필요가 없게 사회적으로 ‘피해자다움’이라는 시선을 없애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의 이름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은 낙인이라는 처벌이 될 수 있지만, 반사회적 정서를 가진 가해자의 경우엔 잘못된 영웅 심리를 부추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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