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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올인해 與 졌다는 이준석 "20대남 특권 누린적 없다"

중앙일보

입력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자애들은 결집도 안 되고, 표도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이번 선거에서 깼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자애들은 결집도 안 되고, 표도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이번 선거에서 깼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이끈 인사 중 한 명으로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꼽힌다. 선거 캠프의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그가 주도한 ‘청년 연설 유세’는 유튜브에서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이런 반향은 선거 결과로도 입증됐는데,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72.5%, 30대 남성의 63.8%가 오 시장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인터뷰

85년생으로 젊지만, 어느덧 10년 차 정치인이다. 2011년 26살에 새누리당 비대위원에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지만, 이후 서울 노원병 선거에서 세 차례 쓴잔을 마셨고 국회는 문턱도 못 넘었다. 하지만 주요 국면에서 그의 발언이 주목을 끄는 경우가 잦고 때론 존재감도 발휘해 일부 당 인사들은 그를 ‘0선 중진의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전 위원은 11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남자애들은 결집도 안 되고, 표도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깨졌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왼쪽)이 서울시장 선거 유세기간인 지난 3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유진상가 일대에서 유세를 마친 뒤 오세훈 후보(가운데)와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중앙포토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왼쪽)이 서울시장 선거 유세기간인 지난 3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유진상가 일대에서 유세를 마친 뒤 오세훈 후보(가운데)와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중앙포토

20대 남성 공략에 집중한 이유는
2018년 젠더 갈등이 촉발했을 때 하태경 의원과 함께 20대 남성과 맥주도 마시고, 고민도 들으면서 공정과 역차별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상당하다는 걸 파악했다. 그때만 해도 20대는 남녀 할 것 없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20대 남성만은 보수 진영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실제 20대 남성이 오 시장에게 몰표를 줬다 
50대 이상 남성은 대체로 가부장제 속에서 혜택을 받았지만, 20대 남성은 같은 또래 여성보다 사회·가정·국가로부터 특혜나 우대를 받은 게 없다. 그런데 국내 정치는 젊은 여성을 무조건 불리한 존재로 놓고, 이를 보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젊은 남성은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이렇게 쌓인 불만이 이번 선거에서 폭발했다.
청년 연설 유세가 화제를 모았는데
당에서 청년 연설을 한다면서 지원서를 받고 면접을 본다기에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라고 극구 반대했다. 우리 당을 비판해도 좋으니 날 것 그대로를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설 순서도 군중이 모이기 전 분위기 띄우기 용이 아니라 메인 순서에 배치했다. 절절한 연설이 이어졌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난 7일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는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준석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난 7일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는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준석 페이스북 캡처]

이 전 위원은 선거 기간 박영선 민주당 후보 캠프의 공세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박 후보 측이 “오 후보가 전광훈 목사의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고 공격하자, 2016년 전 목사가 주도한 국회 기도회에서 박 후보가 발언한 사진을 꺼내 들어 반격했다. “오 후보는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해봤나”라는 민주당 대학생 위원회의 공세에는 서울 삼양동 판잣집에서 살던 오 시장의 가족사진을 게재하며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반박했다.

박 후보 측 공세에 실시간 대응하더라
진보 진영에서 프레임 공격을 하면 그냥 맞고 넘어가는 게 그간의 보수 진영 마인드였다. 나 혼자만이라도 저쪽에서 잔 매를 때리면 두 배로 갚아주자는 자세로 임했다.
민주당의 패인, 뭐라고 보나
선거 뒤 친문 지지층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민주당의 독주나 내로남불 논란 등에는 반성 없이, 더 세게 못 해서 졌다거나 언론 개혁을 못 해서 졌다고 아우성이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지난 9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여당 패배는 여성주의 운동에 올인한 결과”라는 취지의 SNS 글을 올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페이스북 캡쳐]

지난 9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여당 패배는 여성주의 운동에 올인한 결과”라는 취지의 SNS 글을 올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페이스북 캡쳐]

선거 압승 뒤 이 전 위원을 향한 호평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9일 이 전 위원이 페이스북에 “여당 패배는 여성주의(페미니즘) 운동에만 올인한 결과”라고 적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남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려 일부러 잡음을 유발하는 게 아니냐는, 즉 정치 공학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연일 페미니즘과 각을 세우는 이 전 위원의 태도가 ‘왜 우리가 ‘이대녀(20대 여성)’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과 비교되면서 “이준석 자중하라”는 쓴소리도 당 일각에서 나온다.

여성주의를 너무 단선적으로 비난하는 것 아닌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내가 문제 삼는 건 극단적인 페미니즘이다. 젊은 여성은 피해자, 젊은 남성은 가해자 혹은 기득권으로 몰아가는 걸 나는 극단적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기성세대 남성이 누린 특권에 대한 비난을 애꿎은 20대 남성에게 쏟아낸다면 나는 언제든 반박할 준비가 돼 있다.
여전히 불평등을 호소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특정 성별, 세대가 느끼는 문제가 있다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는 건 동의한다. 그런데 차별을 호소하는 방식이 ‘여자라서 죽었다’는 식의 선동이거나 ‘한남충’(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한 표현) 비난 같은 혐오의 방식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이들을 공격할 게 아니라 마음을 얻는 게 정치 아닌가
앞으로 젊은 여성들과도 접점을 늘리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다만 20대 남성을 기득권으로 몰아가는 등 논리의 영역을 벗어난 주장에 대해선 속 시원히 비판도 할 수 있는 게 정치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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