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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국 백신접종률, 1주일 늦은 르완다보다도 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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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45일째에 접어든 한국의 접종률이 연내 집단면역 도달이 예상되는 주요 국가들의 같은 시점 접종률에 한참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26일 백신 접종을 시작한 한국은 11일 접종률이 2.22%(질병관리청 집계, 1차 접종)에 머물고 있다. 이는 접종 속도가 빠른 국가들의 접종 45일째 접종률에 비해 4~38%포인트 가량 낮은 수치다. 속도를 더 높이지 않을 경우 정부가 목표로 한 오는 11월 집단면역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스라엘 국민 38% 맞힐 때 한국은 2% 접종 #전문가 "물량 부족 탓, 연내 집단면역 어려워" #韓 인구 8분의 1 싱가포르, 하루 1만회 더 접종 #하루 접종 美 311만, 英 33만, 세르비아 10만회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일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45일째인 지난 2월 2일 접종률이 37.57%(1차 접종 기준)에 달했다. 한국보다 35.35%포인트나 높았다. 지난해 12월 8일 세계에서 첫 접종에 들어간 영국은 올해 1월 21일 7.93%를 기록했다. 같은 달 14일 시작한 미국의 지난 1월 27일 접종률은 6.19%였다. 몰디브, 세르비아의 45일째 접종률은 각각 39.93%, 13.59%였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돌입 45일째 1차 접종률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19 백신 접종 돌입 45일째 1차 접종률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접종을 시작했으나 의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만큼 갈수록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45일째인 현재, 접종 속도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국은 접종 한 달째인 지난 3월 26일 접종률이 1.55%였는데, 현재 이보다 0.67%포인트 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속도로는 오는 11월 집단면역 도달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접종 속도를 높이려면 '백신 확보 속도'를 높여야 한다. 현재 이처럼 접종률이 낮은 건 정부가 제때 넉넉한 물량을 들여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안전성 문제까지 터져 더욱 힘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초기에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결과다. 이후에도 몇 차례 확보 기회를 정부가 놓쳤다"면서 "현재의 접종 속도, 앞으로도 물량 확보가 불확실한 상황 등을 감안할 때 11월 집단면역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 [연합뉴스]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 [연합뉴스]

블룸버그 백신 트래커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들어 하루 평균 3만2000회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중에 있다. 인구가 한국(약 5200만명)의 8분의 1 수준인 싱가포르(약 589만명)가 하루 평균 4만5000회분을 접종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적은 횟수다. 인구가 한국의 5분의 1정도인 세르비아(약 869만명)도 하루 10만 회분을 놓고 있다. 미국은 311만회, 영국은 33만회 정도를 하루에 접종하고 있다. 김우주 교수는 "한국은 매년 10월 한 달간 1000만명에 독감 백신 접종을 해왔다"면서 "이런 의료 역량이라면 코로나19 백신만 충분해도, 하루 30만회 정도는 놓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따라서 접종률이 이렇게 낮은 원인은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 현재 전 세계 백신 접종률 순위에서 하위권이고, 방글라데시·르완다·레바논 등보다 접종률이 낮다. 르완다의 경우 한국보다 늦은 지난 3월 5일 백신 접종에 돌입했는데, 38일째인 11일 접종률이 2.8%로 한국보다 높다.

블룸버그는 한국이 현재의 접종 속도라면 집단면역을 달성하는데 6년 4개월이 걸릴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이스라엘·영국·미국·몰디브·세르비아 등은 연내 집단면역을 형성할 것으로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현재 접종률로 보면 이스라엘 61.3%, 영국 47%, 미국 34.2%로 집계됐다. 몰디브와 세르비아도 각각 49.1%, 24.6%로 나타났다. 아시아에선 현재 접종률이 19.3%인 싱가포르가 연내 집단면역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국내 백신 수급 상황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는 6월까지 국내에 들어올 백신 중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화이자를 제외하면 모더나·노바백스·얀센 백신 등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식당에서 식사 중인 이스라엘 사람들.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률이 높고 확진자가 대폭 감소하면서 일상으로 복귀 중에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식당에서 식사 중인 이스라엘 사람들.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률이 높고 확진자가 대폭 감소하면서 일상으로 복귀 중에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접종 속도가 빠른 나라들은 효과를 보고 있다. 확진자가 대폭 감소해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은 조만간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준비도 하고 있다. 영국도 봉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일상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른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우주 교수는 "이제는 쉽게 말해 백신 제조사들에 돈을 싸들고 가도 백신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실무진 선에서 뭔가 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면서 "현재 백신 물량을 쥐고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를 상대로 최정상급 사이의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재욱 교수는 "국내에서 단순히 위탁 생산이 아닌, 기술까지 도입한 라이선스 방식의 생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업계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며 "이렇게 하면 국내 물량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얼마전 인도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수출 제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국내 품질을 책임지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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