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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하버드 중퇴생이 이끄는 기술문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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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21세기는 정보기술 시대이다.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 인공지능 등을 망라하여 IT(information technology)라 일컫는 이 정보기술이 없으면 산업은 물론 일상생활도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이런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국가 경제가 망한다는 위기감으로, 그 기술의 기반이 되는 과학적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외치고 있다.

대학 중퇴생들의 IT 신화 #색다른 시각은 색다른 생활에서 #창의성의 기반은 다양성 #실패자 격려하는 사회 토양 필요

이러한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낸 것은 어떤 사람들인가? IT계의 전설적 인물로 꼽히는 세 사람이 있다.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낸 잡스, 마이크로소프트 회사 창설자인 게이츠, 또 페이스북을 창조한 저커버그이다. 이들은 사업가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것을 손수 개발하다 보니 회사를 차리게 되었고 기술적 창의력으로 갑부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 사람 모두 대학 중퇴생들이다. 우리나라 부모님들 같으면 전망 없는 뚱딴지 같은 사업을 벌리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자식을 그냥 놔둘 수 있을까? 특히 게이츠와 저커버그는 보통 대학도 아니고 그 힘겹게 들어간 하버드대학을 아깝게도 그만두었다.

이런 사람들이 기발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IT의 특성도 있지만 과학기술 지식의 본질과 깊은 상관이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도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그리 공부를 잘 했던 사람은 아니었고, 졸업 후에는 취직 대신 세계일주 탐험을 한 후에 집안의 재산만 까먹고 시골에서 은둔하며 연구를 했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교수자리를 잡지 못하여 스위스 특허청 직원으로 일하면서 특수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혁명적 업적들을 이룩했다. 에디슨은 어려서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며 이것저것 배우고 임기응변식의 사업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발명왕의 입지를 굳혔다. 국가적 차원에서 인재를 선출했다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그런 인물들이었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연구는 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만 보고 빨리 달려가는 경쟁이 아니다. 탐구를 하다 보면 목표 자체가 바뀌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질문 자체가 계속 변형된다. 기술의 발전도 비슷한 양상이다. 옛날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할 때 달나라 별나라에 갈 생각은 많이 했지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등에 대한 생각은 꿈꾸지 못했다.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혁신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미 다들 아는 사실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른 시각을 가져보려면 인생 자체를 남들과 좀 다르게 살 필요가 있다. 창의적 업적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좋은 성과만을 낸 모범생은 별로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탄할지라도 잘 뜯어보면 창의적인 업적의 저변에는 대개 갈등과 소외감이나 혼란이 깔려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획일주의적 풍토를 배격하고 좀 색다른 사람들의 숨통을 터 주어야 한다. 관용과 자유에 기반한 다원주의를 추구하고, 서로 이질적인 집단간에도 교류를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선진국의 첨단 과학 기술을 부러워하면서 따라가려 애쓰는데, 그런 논의에서 대개 빠져있는 이야기는 이방인들의 역할이다. 여러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쏟아져 들어왔던 이민자들과 그 자손들이 엄청난 창의적 역할을 해 주었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잘 뜯어보면 비슷하다. 또 유태인을 빼놓고 독일의 과학적 전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민자 특유의 강한 성공욕과 주류사회에 포함되지 못하고 겉도는 상황이 합쳐지면 창의력이 저절로 북돋아진다.

물론 이상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 성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100명 중 하나가 뭔가 기발한 것을 개발해서 사회에 안겨주기를 원한다면, 그러지 못하는 99명의 실패자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무서운 저력은 그런 인생의 실패자들을 격려하고 감싸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온다. 엉뚱한 일을 추구하다가 잘 안된 사람들도 실패했다는 자책감이나 강박관념 없이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시시콜콜한 행복을 찾아가며 잘 살 수 있다. 동네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건, 뜻있는 자원봉사를 하건, 별다른 성공을 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겨내고, 또한 이 시대에 세계를 주도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말해본다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려면 4차산업혁명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어떤 “키워드”에 모든 사람들이 매달리고 “트렌드”에 다들 쏠리는 행태를 버리자. 신선한 창의력은 서로를 몰아치는 전체주의나 군중심리에서 나오기 힘들다. 정답을 넘어서는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정답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하고, 공부 잘해서 일류대학 나와서 취직 잘한 모범생의 모델을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비범한 창의력을 원한다면 기묘한 인생들을 감싸 안는 너그러운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