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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민은행'이라 불리는 중국의 가짜 지폐 마을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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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폐를 들어 위폐 감별을 하는 중국 소상공인 [사진출처=소후닷컴]

지폐를 들어 위폐 감별을 하는 중국 소상공인 [사진출처=소후닷컴]

중국 구멍가게나 노점상 같은 곳에서 종종 겪게 되는 일이다. 지금은 QR코드를 이용한 편리한 전자결제 시스템이 대부분 정착된 중국이지만, 여전히 결제할 때 지폐를 건네면 사장님들이 꼭 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위조지폐 감별 작업이다.

보통 이들은 10위안이나 20위안 지폐는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100위안짜리 지폐는 잘 지나치지 않는다. 꼭 지폐를 들어 조명을 비춰 '가짜 지폐'인지 확인한 뒤에야 캐셔에 돈을 넣는다. 그런데도 이들 얼굴엔 떨떠름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중국 사장님들은 한국 사장님들만큼 현금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진짜 인민폐와 가짜 인민폐 [사진출처=소후닷컴]

진짜 인민폐와 가짜 인민폐 [사진출처=소후닷컴]

"제2의 인민은행?" 후난성의 '가짜 지폐 마을'

중국 인민은행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중국에서 수거되는 가짜 지폐 총액은 연평균 8억위안에 달한다. 위조지폐를 만들고 유통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중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으로 엄격하게 처벌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초 전국적인 위조지폐 유통망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후난성(湖南省) 영저우시(永州市) 아래의 한 소규모 현(县)에서 대규모 가짜 지폐 생산현장이 적발되면서다. 후난성에서 압수된 위조지폐의 약 80%가 바로 이 다오셴(道县)이라는 곳에서 생산됐으며, 그 금액은 약 2352만위안(약 40억원)에 달했다.

이 지역 내에서도 대규모로 위조지폐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 서우옌전(寿雁镇)이라는 마을이다. 이곳은 '제2의 인민은행'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위조지폐가 현지 '농민'들에 의해 발행되고 있었다.

 다오셴(道县)의 중심지 풍경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다오셴(道县)의 중심지 풍경 [사진출처=바이두바이커]

위조지폐 생산자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농민'

사건 전담반과 현지 공안이 취조한 농민 천(陈)모씨는 이 위조지폐 생산현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주변의 다른 농민들에게 일감을 주며 대량의 위조지폐를 찍어냈다.

그를 비롯한 '위조화폐 조작단'을 수사하며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위조지폐 생산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특수재질의 종이와 채색용 잉크, 프린터기만 있으면 가능했다. 이러한 도구들의 유통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 도구들을 갖추고 나면 위조지폐 도안을 구해야 하는데, 이 역시 어렵지 않다. 이 도안들을 판매하고 있는 QQ(중국 메신저)의 '어둠의 단톡방'에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나면 다운로드 후 바로 출력할 수 있는 파일을 구매할 수 있다. 전 과정에서 큰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위조지폐 생산은 그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위조지폐 제작에 쓰이는 잉크 [사진출처=중국신문주간]

위조지폐 제작에 쓰이는 잉크 [사진출처=중국신문주간]

문제는 유통이다. 가짜 지폐를 찍어냈어도 이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법망에 걸리지 않고 유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사실 이 위조지폐 생산망은 하나의 피라미드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농민들은 여기서 최하층에 속하는 생산자 계층에 속한다. 유통은 이들보다 상부에 있는 '보스'의 일이다. 피라미드의 상부구조에 가까워질수록 베일은 더 두꺼워지며, 위조지폐 생산자 농민들은 이 보스를 직접 만나지 못하고 중간 책임자들과만 접촉할 수 있다.

 위조지폐를 제작해 검거된 다오셴의 한 농민 [사진출처=펑파이]

위조지폐를 제작해 검거된 다오셴의 한 농민 [사진출처=펑파이]

위조지폐 생산이 중대한 범죄인데도 이곳 농민들이 이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이 일이 다른 일보다 더 큰돈을 어렵지 않게 벌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장의 100위안(약 1만7천원) 가짜 지폐를 생산해낸 후 이 농민들이 받는 금액은 약 10위안(약 1천7백원)이다. 잉크와 종이 등 원재료값을 다 해서 약 3위안 정도면 한장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농민들은 대략 70%의 쏠쏠한 마진을 남길 수 있다.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것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사업이다.

이렇게 생산된 위조지폐는 상부의 유통망을 통해 근방의 '위조지폐 유통의 요충지'인 광저우를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범인을 검거하는 위조지폐 수사 전담반 [사진출처=중국신문주간]

범인을 검거하는 위조지폐 수사 전담반 [사진출처=중국신문주간]

QR코드 이용한 전자결제의 보편화, '디지털 위안화'까지?

수년 전부터 중국은 1·2선 도시를 중심으로 QR코드를 통한 전자결제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3·4선 도시의 소규모 가게나 약국, 관광지 등에서는 아직 현금만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갑이나 카드가 없어도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나가면 위챗이나 알리페이를 켜서 대부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현금의 이용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위조지폐가 설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사진출처=신화]

[사진출처=신화]

그에 더해 중국 인민은행에서 만들고 유통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 역시 위조지폐 제거 작업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중국에서 앞으로 100위안짜리 지폐를 조명을 비춰 위폐감별을 하는 모습은 앞으로 더욱 보기 힘든 광경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이나랩 허재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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