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는 대연정 카드라도 내놨다…"뜨악했다"던 文 결국 마이웨이

중앙일보

입력 2021.04.10 05:00

업데이트 2021.04.10 07:20

“정치는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했는데, 오래 해보니 그게 아니라 적(敵)을 줄이는 일이더라.”  

임기를 몇달 남겨두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변에 자주 했던 말이라고 한다. 자신의 임기 후반 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 적을 줄이려는 정치적 시도를 하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가 임기 3년차이던 2005년 7월의 대연정 제안, 큰 야당과 연합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1월 21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재인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후 악수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1월 21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문재인 신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후 악수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 동의해준다면, 장관 임명권을 주겠다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에 제안했다. 정적(政敵)에게 내각 구성권을 양보하겠다는 파격이었다.

그러나 실험은 실패했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반발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노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당시엔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또 재·보선 패배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과반 의석도 무너진 상황이었다. 대연정은 야당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숙원인 지역구도 해체는 물론 어떠한 국정운영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고민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야당은 이미 국정동력을 상실한 여당과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시간만 보내면 정권 교체가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실험은 훗날 재평가받기도 했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2018년 “우리 정치사에 ‘연정’이란 상생의 가치를 개척한 혜안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어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지도자가 결단하고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한 뒤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각당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한 뒤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각당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정 제안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대연정을 “참여정부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이라고 기술했다. 그는 저서 『운명』(2011년)에서 “탄핵반대 촛불을 거쳐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우리 측 지지자들을 경악시켰다”며 “나를 비롯해 참모들도 반대했던 일”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과거에는 여당이 형편없이 소수당일 때여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다수당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재ㆍ보선에서 의석을 잃어 과반수가 무너졌지만, 그래도 민노당과 공조하면 과반수였다. 대통령의 얘기에 뜨악해했다”고도 했다.

‘내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적을 줄이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깨달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촛불'로 수립된 문재인 정부의 제1 과제를 ‘적폐청산’에 뒀다. 사실상 적(敵)에 대항하는 ‘우리편 정치’를 예고한 선언이었다.

특히 지난해 4·15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야당이 반대했던 임대차 3법 등 정부의 ‘핵심 법안’들을 줄줄이 강행 처리했다. 야당과 부동산 정책 전문가, 심지어 여권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4·7 재·선에서 참패했다. 문 대통령은 참패 다음날인 지난 8일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는 짧은 입장문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공개했다.

대연정에 대해 "뜨악했다"고 했던 문 대통령의 선거 패배 입장문에는 통합이나 야당과의 협치 등 태세 전환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 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며 기존의 정책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뜻을 시사했다. 사실상의 ‘마이웨이’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다.

16년전 과반 의석을 잃었던 열린우리당과 달리 민주당은 여전히 174석의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까.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번 선거 패배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정부·당이 4년 동안 ‘우리 편’만 챙기고 적을 늘리는 정치를 한 것에 대한 책임과 평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여론의 우위를 바탕으로 각종 법안들을 강행처리하더라도 명분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174석의 의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야당이 반대하는 어떠한 정책도 밀어부칠 수 없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학계의 평가도 비슷하다.

여권에 다양한 정치적 조언을 해왔던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과거 조국 사태 때 여러 채널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청와대는 그때마다 ‘그럴 리 없다’며 귀를 닫아버렸다”며 “노 전 대통령은 그래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시도라도 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런 시도조차 없다. 비유하면 ‘샌님 정치’, ‘오기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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