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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검수완박, 그래도 간다? 참패한 민주당 노선투쟁 조짐

중앙일보

입력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과 지도부가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선거 참패 다음날인 지난 8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화상 의원총회에선 당의 노선 전반을 재검토하고 당내 소통을 강화하라는 초·재선 의원 10여 명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지도부가 반성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이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지도부 구성원 중 친문 인사들에게선 “정책 입법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질서 있는 퇴진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나왔지만 김태년 당 대표 권한대행과 최고위원단 전원은 이날 오후 총사퇴했다.

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고 5월로 예정됐던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를 앞당기기로 결정했지만 노선 전환을 촉구하는 쇄신파와 문재인 정부 정책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는 친문 강경파 사이의 파열음은 이제 시작이다. 당 지도부의 한 핵심 참모는 “당 지도부가 바뀌면 정책 기조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다른 의원은 “선거 패배를 성찰하는 것과 개별 정책 이슈의 방향을 바꾸는 건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與, 부동산 벨트 쓴맛 보고도 “정책 기조 유지”

4·7 재·보궐 선거 결과로 빨간불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은 부동산 정책 분야다. 투표율 1~3위를 차지한 강남3구(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순)외에도 성동구·마포구 등 지난 3월 공시지가 인상으로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가중된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민주당은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국민의힘에 대패했다.

부동산 정책 속도조절론은 여론조사에 밀리던 민주당이 선거 전부터 군불을 땠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오는 6월에나 판단할 수 있는 LTV(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 가능성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선거 당일 노웅래 최고위원은 “공시지가 현실화를 속도 조절해서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세를 낮추겠다”고 말했다. 박영선 후보가 공시지가 인상률 제한을 약속하자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협의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태릉 골프장 부지 공공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 맞서는 공약을 다수 발표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나온 당의 입장은 “정책 기조 유지”였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8일 “정부의 2·4 공급대책은 상당히 시장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게 정책 고삐를 죄야 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톤도 “기존의 부동산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로 비슷했다.

하지만 당·정의 공식 입장과 무관하게 2·4 공급대책 등은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2·4 대책 후속법안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공공개발의 키를 맡기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진성준 의원 대표발의)은 아직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도 못한 상태다. 한 여당 국토위원은 “LH가 관여하는 모든 공공개발을 백지화하라는 여론마저 작지 않은 데다 선거 참패로 입법 동력이 떨어졌다”며 “당분간 단독 처리는 불가능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부동산 정책 기조 유지는 여전히 소통 없는 모습을 보여준 단면”이라면서 “지도부를 재구성하는 동안 민주당의 주요 정책 방향도 되돌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수완박’ 한 박자 쉬고?

“‘검수완박’은 지금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8일 ‘처럼회’ 소속 한 의원)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4·7 재·보궐선거까지 중도층에 피로감을 준 또 다른 이슈는 검찰 개혁이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이 일단락되기가 무섭게 민주당은 검찰개혁특위를 띄워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 개혁 시즌2’를 밀어붙였다.

검찰개혁특위에 다수 포함된 초선의원 모임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선거 이후 ‘검수완박’을 위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추진과 속도를 궁리하고 있다. 김용민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그는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LH 사태가 터지면서 지지율 하락이 촉발된 것이지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 아니다"라며 "검찰개혁, 언론개혁 중단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과 같은 강경파도 있지만 또 다른 내부 의견도 있다. 처럼회 소속의 한 의원은 “검찰 수사권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변함없다”면서도 “지금은 선거의 패인 분석을 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다수 의견은 “검찰개혁 시즌2의 불씨는 여전히 있지만 지도부가 재구성될 때까지 한 박자 쉬어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검수완박' 등 검찰개혁을 계속 추진하자는 뜻이다.

반면 바깥 의원들의 공기는 조금 다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먹고사는 문제로 깨졌는데 강한 개혁하자는 말이 아직도 나오냐. 반성도 없느냐”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민심을 받아들이고 방향을 틀려면 큰 결기가 필요한데 아직 내부에선 준비가 안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당내 노선투쟁이 불 붙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여론조사업체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선거 참패 이후 지도부 총사퇴는 쇄신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면서 “민주당이 진짜 변화를 할지는 16일 원내대표 선거와 이후 지도부 구성을 보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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