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9년 못깨어난 흑인 축구영웅, 그옆 지킨 한 여자의 순애보

중앙일보

입력

1982년 3월 17일. 한 프랑스 축구 선수가 무릎 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간단한 수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술 중 의료 사고가 있었고, 39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그는 73번째 생일 파티를 침대 위에서 열어야 했습니다. 1970년대 프랑스 축구 국가 대표로 활약하다가 한순간에 식물인간이 된 비운의 축구 선수, 장 피에르 애덤스(73)의 이야기입니다.

1970년 대 프랑스 전 축구 국가대표로 뛴 장 피에르 애덤스는 무릎 인대 수술 중 의료 사고를 당해 39년 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CNN캡처]

1970년 대 프랑스 전 축구 국가대표로 뛴 장 피에르 애덤스는 무릎 인대 수술 중 의료 사고를 당해 39년 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CNN캡처]

프랑스로 온 10살 아프리카 소년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 출신인 아담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열 살 되던 해, 순례길에 오른 할머니를 따라 프랑스에 들르면서 그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교육열 높은 부모님은 그를 프랑스 중부의 한 기숙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홀로 유학 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후후월드]

그러나 그는 씩씩하고, 성격 좋은 아프리카 소년이었습니다. 덕분에 숱한 인종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빠르게 현지 문화에 적응할 수 있었죠. 유학 5년 차에는 한 프랑스 부부에게 입양돼 생활은 한층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70년대 프랑스 리그에서 수비수로 뛰던 시절의 애덤스. [CNN 캡처]

1970년대 프랑스 리그에서 수비수로 뛰던 시절의 애덤스. [CNN 캡처]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엔 늘 아쉬운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축구'였습니다. 비록 부모님 뜻에 따라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의 진짜 꿈은 축구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청소년 축구팀에 합류합니다. 19살에는 퐁텐블로 FC에서 스트라이커로 뛰며 아마추어 축구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프로가 되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같은 해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쳤습니다. 축구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이었죠. 이 사고로 친구도 잃었습니다. 당시 애덤스는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 선택은 오히려 기회가 됐습니다. 출중한 실력에 군 대표 선수로 발탁되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제대 후에는 프랑스 1부 리그에 속한 '님 올랭피크(Nîmes Olympique)'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습니다. 아프리카 소년의 오랜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됐습니다.

인종의 벽 허문 연상연하 커플  

지금의 아내 베르나데트 애덤스(77)를 만난 것도 그즈음이었습니다. 둘은 프랑스 중부 몽타르지에서 열린 한 축제에서 만났습니다. 아담은 아내의 춤 추는 모습에, 아내는 그의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모습에 끌렸다네요.

애덤스(가운데)가 아내(왼쪽),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게재된 프랑스 현지 신문[CNN캡처]

애덤스(가운데)가 아내(왼쪽),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게재된 프랑스 현지 신문[CNN캡처]

베르나데트는 애덤스보다도 4살 많은 프랑스인입니다. 당시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 연상연하 커플을 향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베르나데트의 어머니도 “흑인에게 딸을 줄 수 없다”며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때 결단을 내린 건 아내였습니다. 베르나데트는 “내 배우자는 애덤스이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뒤 그대로 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단호한 태도에 결국 부모님도 반대 의사를 꺾었습니다. 두 사람은 1969년 결혼에 골인,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블랙 록' 프랑스 국가대표로  

축구선수로서 애덤스의 기량도 쑥쑥 성장하면서 1970년대 프랑스 리그의 대세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아프리카계 선수가 흔치 않던 시절 애덤스는 등장만으로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스트라이커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꾼 것도 신의 한 수였고요.

그는 '블랙 록(Black Rock·검은 바위)'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O.G.C 니스, 생제르맹 등 프랑스리그를 종횡무진했습니다. 9년 동안 수비수로 327경기를 뛰고, 32골을 넣으며 프랑스 축구에 새 역사를 써갔습니다.

아내가 소장하고 있는 애덤스의 선수 시절 사진들. [CNN 캡처]

아내가 소장하고 있는 애덤스의 선수 시절 사진들. [CNN 캡처]

1972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됐습니다. 프랑스에서 몇 안 되는 흑인 국가대표로 꼽힌 그는 4년간 22개의 국제 경기를 뛰며 맹활약했는데요. 특히 1973년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프랑스 역대 최고 수비수로 꼽히는 마리위스 트레소르와의 콤비 플레이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트레소르의 기술과 아담스의 체력을 결합한 콤비 수비로 경기력을 이끌었는데요.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블랙 가드'(Black guard)'로 불렀답니다.

애덤스는 현재 프랑스에서 뛰고 있는 많은 아프리카계 선수의 길잡이가 된 선구자로 평가받는데요. CNN은 “애덤스가 프랑스 대표팀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이후 비에라, 드사이, 튀랑 등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1998년 월드컵 우승멤버에 포함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부상, 그리고 의료사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슬럼프와 부상을 겪으며 서른셋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합니다.

특히 무릎 부상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니스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중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마취과 의사가 약물을 과다투입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33살 생일을 지난 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습니다.

39년째 애덤스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 베르나데트 애덤스. 그는 지난 3월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덤스의 근황을 전했다. [CNN캡처]

39년째 애덤스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 베르나데트 애덤스. 그는 지난 3월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덤스의 근황을 전했다. [CNN캡처]

한순간에 식물인간이 된 그의 곁을 지킨 건 아내 베르나데트였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애덤스를 병원이 아닌 남부 님에 있는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깨어날지 모를 남편을 39년간 지극 정성으로 돌봤습니다.

매일 아침 애덤스를 씻기고, 삼시 세끼 환자식을 준비하고, 밤을 새워 지켜보는 일 모두가 베르나데트의 몫입니다. 이런 일상은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애덤스의 옛 동료들은 베르나데트에게 안락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데트는 아직 남편을 놓아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베르나데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에게도 일상이 있다. 오전 7시면 기상하고, 우리의 말에 귀도 기울인다. 내가 옆에 가면 숨결이 달라진다. 나는 항상 그와 대화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는데요. 그리고는 여전히 남편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의학은 발전하기 마련이고, 그가 예전처럼 다시 일어날 날을 기다린다"면서요.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