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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동생 '왕자의 난' 일단락? 요르단 왕가의 찻잔 속 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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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지난 며칠 간의 도전은 우리 국가의 안정에 가장 어렵고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란은 진정됐으며 요르단은 이제 안정적이고 안전합니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이 지난해 12월 10일 제19회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압둘라 국왕은 7일(현지시간) 국영 TV에 나와 이번 사태에 대해 "내가 형제이자 하심 왕가의 보호자, 국민의 지도자로서 느낀 충격, 고통, 분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AP=뉴시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이 지난해 12월 10일 제19회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압둘라 국왕은 7일(현지시간) 국영 TV에 나와 이번 사태에 대해 "내가 형제이자 하심 왕가의 보호자, 국민의 지도자로서 느낀 충격, 고통, 분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AP=뉴시스]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2세는 7일(현지시간) 국영 TV에 나와 이른바 ‘왕자의 난’이 일단락됐다고 선언했습니다. 사흘 전 이복동생인 함자 빈 후세인 왕자(41)가 자택에 연금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 그 배경을 두고 각종 관측이 오간 뒤였습니다. 왕자가 쿠데타 기도에 연루됐다는 소문과 함께 측근들에 대한 구금도 이어졌습니다.

[알지RG]

이후 반발하는 듯했던 함자 왕자가 자신에 대한 처분을 국왕의 뜻에 맡긴다는 서한에 서명하며 사실상 ‘충성맹세’를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곤 압둘라 2세가 등장해 상황 종료를 알린 것입니다.

그사이 분주하게 움직인 또 다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서둘러 압둘라 2세 현 국왕을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상황 수습을 유도했습니다.

중동 내에서 그나마 정정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요르단, 안팎에서 존중받던 왕가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왜 미국은 그처럼 서둘러 움직여야 했을까요.

이복동생이 일으킨 왕자의 난?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 빈 후세인 왕자의 2015년 모습. [AFP=연합뉴스]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 빈 후세인 왕자의 2015년 모습. [AFP=연합뉴스]

3일 함자 왕자의 자택에 요르단군 합참의장 일행이 들이닥칩니다. 자택을 압수수색 한 뒤 집 밖에 나가지 말라며 전화 등 통신수단을 끊었습니다. 같은 시각 바셈 아와달라 전 재무장관 등 10여 명의 인사에 대한 체포 작전도 벌어졌습니다.

이에 함자 왕자는 영국 공영방송 BBC에 급히 5분 42초짜리 동영상 하나를 전달합니다. 이 영상을 통해 그는 “나는 어떠한 음모에도 가담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부패했고 무능한 정부가 비판자들을 억압하고 있다”며 이복형이 다스리는 정부를 향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부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 “함자 왕자가 외세와 결탁해 요르단의 안보를 훼손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며 “당국이 함자 왕자와 해외 세력의 통신을 도청해 요르단의 안전을 해치려는 것을 밝혀냈다”고 말합니다.

함자 왕자가 아와달라 전 재무장관과 왕실 인사인 샤리프 하산 빈 자이드, 그리고 외세와 결탁해 궁정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주장이죠. 그는 ‘해외 세력’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요르단 뉴스통신사 암몬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직 요원인 사업가 로이 샤포슈닉이 이번 음모에 연루됐다는 보도를 합니다. 샤포슈닉이 함자 왕자의 부인에게 접근해 이들 가족이 외국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자가용 비행기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는 겁니다.

모사드 연루설까지 불거진 것이죠. 하지만 샤포수닉은 자신은 모사드와 관계없고 단지 함자 왕자 가족이 연금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와 도움을 주려 했을 뿐이라고 관련설을 부인했습니다.

아직 사태를 둘러싼 자세한 정황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전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함자 왕자가 본격적인 쿠데타를 기도한 건 아닌 것 같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체포된 인사 10여 명의 면면을 살펴봐도 쿠데타에 핵심적으로 필요한 군 관계자는 없었다는 것이죠. 로이터 통신은 미국 전직 관료를 인용해 “이들이 쿠데타를 도모했다기보단 부족들의 지지를 얻어 민중 시위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중동의 스위스’에서 터져 나온 갈등

2011년 2월 이집트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은 알제리와 이집트를 거쳐 중동 아랍권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EPA=연합뉴스]

2011년 2월 이집트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은 알제리와 이집트를 거쳐 중동 아랍권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EPA=연합뉴스]

요르단은 중동 국가지만 석유와 천연가스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사정의 이집트나 튀니지, 레바논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굳건한 왕정을 유지해왔습니다. 개방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중동의 스위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이 이례적인 건 그래서입니다.

요르단이 안정적이었던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하셰미테 왕실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주변 중동국가들로부터도 정통성을 인정받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요르단 왕실은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로 존중받아 왔습니다.

이 정통성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건 서방국가들의 지원입니다.

천연자원은 없지만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한 요르단은 전략적으로 친(親)서방 노선을 걸어왔습니다. 현 국왕도 지난 1999년 즉위하기 전까지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이후 1988년엔 미국 조지타운대학원을 수료하며 서방 사회와 소통해왔죠.

요르단은 서쪽으론 이스라엘, 동쪽으론 이라크, 북쪽으론 시리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어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구글 캡처=연합뉴스]

요르단은 서쪽으론 이스라엘, 동쪽으론 이라크, 북쪽으론 시리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어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구글 캡처=연합뉴스]

요르단은 서쪽으론 이스라엘, 동쪽으론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또 북쪽으론 시리아와 맞닿아 있죠. 때문에 이스라엘과 타 중동 국가들 사이의 완충지대이자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기 전 수용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르단은 IS(이슬람 국가) 퇴치에 앞장서며 서방국들에 신뢰를 쌓았습니다.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미국이 서둘러 현 정권에 대한 지지 표명을 발표한 것도 중동 지역의 안정에서 차지하는 요르단의 중요성을 보여주죠.

이슬람국가(IS) 공습 작전에 참가했다가 2014년 12월 생포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흐 중위. IS가 알카사스베흐 중위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장면이 담긴 22분짜리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자 분노한 압둘라 2세 국왕은 IS를 향한 대규모 폭격을 지시했다. [테러·극단주의 감시단체 시테(SITE) 제공 영상 캡처]

이슬람국가(IS) 공습 작전에 참가했다가 2014년 12월 생포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흐 중위. IS가 알카사스베흐 중위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장면이 담긴 22분짜리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자 분노한 압둘라 2세 국왕은 IS를 향한 대규모 폭격을 지시했다. [테러·극단주의 감시단체 시테(SITE) 제공 영상 캡처]

BBC는 “하셰미테 왕실이 무너지면 지역 전체가 격랑에 휘말릴 여지가 있다. 어쩌면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는 그토록 바라던 일이 벌어질까 잔뜩 기대했다가 입맛을 다시고 있을지 모른다”고 전했을 정도니까요.

경제난에 수면 밑 불만 터져 나와 

사태는 일단 봉합됐지만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입니다. 요르단 왕정의 안정을 지탱해주던 기둥들이 흔들리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면 섭니다.

당장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주축 산업인 관광업이 흔들리자 취약한 경제 구조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친서방 정책에 불만을 가진 부족세력들도 정정불안을 틈타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미국 등 서방의 관심과 지원도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입니다.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떨어지면서 중동 지역에 대한 관여의 강도가 줄었다는 것이죠.

지난 2018년 경제난의 지속으로 요르단 국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요르단의 경제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뉴시스=미들이스트모니터닷컴]

지난 2018년 경제난의 지속으로 요르단 국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요르단의 경제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뉴시스=미들이스트모니터닷컴]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요르단이 안정적인 국가라는 인식과 달리 청년 실업 등의 경제적 불만으로 시위가 꾸준히 있어왔다”며 “41세로 젊은 함자 왕자도 사실은 왕권 경쟁에서 밀렸던 신세대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이스라엘이 중동 내에서 완전히 고립됐던 것과 달리 주변국들과 수교를 늘리고 있고, 미국 입장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우방인 것은 사실이나 중동 석유 의존도가 떨어지며 예전만큼의 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여건 변화에 왕가 내 잠재한 갈등 구도가 수면 위로 표출됐다는 겁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후세인 빈 탈랄 전 국왕과 그의 둘째 부인 무나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입니다. 반면 함자 왕자는 후세인 전 국왕의 4번째 부인인 누르 왕비가 낳았습니다.

압둘라 2세는 1999년 후세인 전 국왕이 사망한 뒤 왕위를 물려받으며 선왕의 뜻에 따라 함자 왕자를 왕세제로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함자 왕자의 왕세제 지위를 박탈했고, 그 뒤 함자 왕자는 야인으로 지내왔습니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야당 역할을 하는 부족 집단에서 집권 초 완벽한 영어와 미숙한 아랍어를 구사했던 압둘라 국왕보다 함자 왕자를 더 진정한 무슬림으로 평가한다”며 “현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은 점차 함자 왕자에 대한 지지로 모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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