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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막대 아이스크림 같은 빌라, 왜 튀게 지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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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호 26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지어진 다가구주택 ‘단단집’. [사진 진효숙 작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지어진 다가구주택 ‘단단집’. [사진 진효숙 작가]

딸기 맛 막대 아이스크림인가? 빨간 선인장인가?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건물이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인근에 있다. 행인의 발길을 붙잡고 기어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어 소장하게 한다. “대체 정체가 뭐지”라는 수군거림은 덤이다. 정사각형의 빨간 타일이 픽셀처럼 붙여진 모양새와 대칭형 외관까지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만든 건물이 현실에 등장한 것만 같다.

서울 망원시장 인근 ‘단단집’ #투룸 중 하나 부엌으로도 사용 #샤워실·변기 분리해 화장실 쾌적 #볕 쬘 수 있는 테라스도 만들어 #내부 고민, 살기 좋은 집 구현 #국민 40% 사는 빌라촌 환경 열악 #제도·시스템적으로 수준 높여야

독특한 외관과 달리, 건물의 용도는 흔하다. 4층 규모의 다가구주택(대지면적 166.3㎡, 연면적 291.60㎡), 통상 말하는 빌라 건물이다. ‘단단집’으로 불리는 이 집의 2~4층엔 모두 5가구가 산다. 1층은 여느 집처럼 주차장과 상가 하나가 있다. 그런데 이 튀는 건물을 설계한 서재원 건축가(aoa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외관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대체 왜 이렇게 지었을까.

일조권 사선 제한으로 4층부터 층층이 지어야 하는 한계를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사진 진효숙 작가]

일조권 사선 제한으로 4층부터 층층이 지어야 하는 한계를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사진 진효숙 작가]

“이 집은 좌우가 똑같은 대칭형입니다. 일조사선 제한으로 건물의 북쪽 면을 층층이 들여 지어야 하는데 이를 디자인으로 활용했습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부 공간입니다. 집에서 최소한의, 조리할 수 있는 길이의 싱크대와 식탁 놓을 자리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임대용 빌라 건물을 지을 때 그동안 이런 기본을 생각하며 짓지 않아 왔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층마다 계단을 가운데 두고 대칭형으로 두 집을 뒀다. 못 쓰는 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여기까지는 소위 ‘집 장사’들이 짓는 임대용 다가구 건물과 접근법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문고리 개수’부터다. 통상 투룸의 경우 전용면적 33㎡에 방 두 개가 먼저 자리 잡고, 남는 애매한 공간에 부엌과 화장실을 넣는다. 임대를 위한 방 두 개에 중점을 두느라 싱크대도 작다.

단단집, 못 쓰는 면적 최대한 줄여

투룸 가구의 내부. [사진 진효숙 작가]

투룸 가구의 내부. [사진 진효숙 작가]

‘단단집’은 부엌에 방을 내줬다. 집에 들어서면 거실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중 하나가 부엌이다. 다른 한쪽은 침실이다. 이 두 방에는 미닫이문이 달려 평소에 열면 공간이 모두 하나로 이어지고, 문을 닫으면 분리된다. 서 건축가는 “손님이 왔을 때 주방이 지저분하면 문을 닫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투룸 중 방 하나를 차지한 부엌의 싱크대 길이는 냉장고를 빼고서 2.1m다. 개수대와 인덕션 사이 조리대도 60㎝가량 된다. 전용 84㎡(30평대) 아파트와 비슷하다. 거실 한쪽에는 붙박이 옷장 공간과 화장실이 있는데 샤워실과 변기가 분리돼 있다. 변기 옆에서 샤워하느라 물이 다 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쾌적한 동선이 확보된 단단집의 투룸 면적은 35㎡(약 10.6평). 작은 공간을 매만지고 제자리를 알맞게 찾아준 결과, 작지 않은 집이 됐다. 서 건축가는 “임대 공간만 생각하며 빨리 찍어내듯 만드는 빌라에서 살다 보면 작은 불편함이 쌓이고 쌓여 결국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빌라 문화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단단집도 경제성만을 쫓으면 쉽게 만들 수 없는 결과다. 건축주 즉, 개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조형성과 쾌적함을 위해 공간을 꽉 채우지 않았다. 입주민이 볕 쬘 수 있는 테라스도 만들었다. 그 결과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은 175.35%로, 최대한도인 200%에 못 미친다. 대신 월세는 인근 비슷한 크기의 투룸 대비 비싸게 받는다.

빌라 동네의 단단집. [사진 진효숙 작가]

빌라 동네의 단단집. [사진 진효숙 작가]

잘 지은 공간에 살고 싶어 하는 수요는 많다. 무조건 넓은 공간보다 좋은 공간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단단집은 드물게 잘 지은 빌라다. 결국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 40%가 단독주택을 포함한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에서 산다. 아파트 단지 밖 소위 ‘빌라촌’이라 불리는 이 동네에서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하거나,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길 기다리며 살아간다.

김현석 건축가(준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주거정책을 말할 때 모두가 아파트만 이야기하니 단지 밖 동네는 점점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며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주거환경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적인 방안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건축사이자 프랑스 건축사이기도 한 그는 과거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 리옹’에서 일하며 한국과 글로벌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와 함께 빌라 동네를 살펴봤다.

단단집의 컨셉 투시도. 대칭형태로 조형성과 공사 효율성을 높였다. [사진 aoa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단단집의 컨셉 투시도. 대칭형태로 조형성과 공사 효율성을 높였다. [사진 aoa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빌라 동네의 골목길은 유독 어둡다. 건물 1층마다 불 꺼진 주차장이 있어서다. 1층에 기둥만 두고 비우는 필로티 구조로 빌라를 짓는 탓이다.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서다. 주차장법 강화로 다가구의 경우 가구당 전용면적에 따라 0.5~1대의 주차공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데 공간이 협소했다.

단단집의 컨셉 투시도. 대칭형태로 조형성과 공사 효율성을 높였다. [사진 aoa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단단집의 컨셉 투시도. 대칭형태로 조형성과 공사 효율성을 높였다. [사진 aoa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이에 정부가 고안한 것이 필로티 구조다. 1층에 필로티 주차장을 만들 경우 이 면적을 건축면적에서 빼서, 한 층 더 올려 지을 수 있게 됐다. 이후로 보행자의 눈높이에 있는 빌라 1층이 모두 주차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차를 위한 공간이니 인기척에 따라 잠깐 켜지는 센서 등만 있어 길 전체가 늘 어둡다. 김 건축가는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 공유하는 시대가 온 만큼 집집이 꼭 주차장을 두게 하는 제도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파리의 움직임은 빠르다. 파리지앵의 자동차 소유가 줄어들면서 도시계획도 이에 맞춰 변했다. 2015년 파리시는 집을 새로 지을 때 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도시계획을 바꿨다. 원래 100㎡당 주차 1대를 넣는 것이 의무였다. 김 소장은 “2013년 기준으로 62% 이상의 세대가 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고, 가구 수 기준으로 절반 이상이 1인 가구인데다가 공용주차장도 충분하다보니 집집마다 주차장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용적률 높여도 일조권 제한 탓 못 지어

이에 앞서 오래된 건물이 많은 도시다 보니 주차 문제는 늘 골치였다. 옛 건물을 들어 올려 1층에 주차장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파리시는 숨은 공간을 찾아냈다. 광장이나 공원 아래,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 길가에 거주자 우선 주차공간도 만들었는데, 자리를 지정하는 한국과 달리 구역을 지정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주차하도록 했다. 공간을 더 유연하게 써서 더 많은 차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조치다.

프랑스 리옹 광장 아래 지하주차장. [사진 기욤 페레]

프랑스 리옹 광장 아래 지하주차장. [사진 기욤 페레]

김 소장은 “무엇보다도 동네 구역별로 마을 주차장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집에 가까운 마을 주차장이 있다면 집집마다 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집을 더 많이 지을 수 있게 되니 집값도 내려가고 골목길 환경도 좋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3종으로 나뉘어 있는 일반주거지역을 통폐합해서 용적률 300%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용적률을 높여도 작은 필지의 주거지에서는 높게 지을 수 없다. 1970년대 초에 만든 일조권 사선 제한 탓이다.

건축법에 따라 전용·일반 주거지역에서 건물을 지을 때 정북 방향으로 옆집 경계선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한다. 높이 9m 이하는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5m, 9m 초과 부분은 해당 높이의 2분의 1 이상 띄워서 건물을 지어야 한다. 즉 3층까지는 반듯이 짓다가 4층부터 건물이 계단처럼 꺾이게 된다.

뒷집에 볕이 들게 한 조치다. 그런데 만약 땅의 두 면이 북쪽을 보고 있는 경우는 어떨까. 정남향으로 땅이 반듯하게 구획되지 못한 서울 강북에서 흔하다. 이 경우 두 면 모두 일조권 사선 제한을 받아 신축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집 지을 면적이 안 나와서다. 이러니 용적률을 아무리 높여줘도 소용없다. 김 건축가는 “빌라의 층고가 유독 낮은 것도 이 일조권 사선 제한 탓”이라며 “빌라에 적용되는 건축법, 주차장법, 지구단위계획 등 법적인 시스템 자체가 좋은 건축가가 참여하더라도 좋은 주거양식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바섬의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길. [사진 수터스 반 엘동크 건축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바섬의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길. [사진 수터스 반 엘동크 건축가]

걷기 좋은 환경도 중요하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차와 사람 길을 분리하듯 단지 밖의 환경도 고민해야 한다. 컨테이너 부둣가였다가 주거지역으로 재개발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바(Java) 섬의 경우 섬의 가운데, 건물 뒷면을 따라 난 길은 사람과 자전거만 다닌다. 차는 건물 앞면의 다른 길로 다닌다. 도시를 재개발하거나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 여전히 공급량만 따지는 한국의 갈 길은 멀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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