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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 복원 가속도, 북핵 해법 방향타 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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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호 10면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왼쪽)이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을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신화=뉴시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왼쪽)이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을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신화=뉴시스]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와 관련된 7개국 대표들은 지난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회의를 연 데 이어 9일에도 2차 회의를 이어갔다. 이란 핵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우선 외교 과제 중 하나로 향후 지구촌 핵 확산 방지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안보리 이사국·이란 2차례 회동 #협상 결과 북핵 해결에도 영향 #김정은 ‘고난의 행군’ 다시 거론 #제재 지속 예상, 내부 결속 강화

특히 이번 협상은 향후 전개될 북핵 협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주요 현안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란과의 협상 결과가 북핵 이슈에도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이란 핵합의 복원 문제는 이란이 선호하는 다자 논의를 거쳐 궁극적으로 미국과 이란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반면 북핵 문제는 현재 다자 테이블에 올려놓을 상황이 아닌 만큼 북·미 양국이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하지만 양국 간 의견 차가 워낙 커서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핵 의무 이행” vs “제재 해제”=빈에서 열리고 있는 이란 핵합의 관련국 회의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과 독일, 그리고 이란이 참가했다. 다만 미국과 이란은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자 대면 대신 다른 참가국들을 통해 자국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상대방 의사를 전달받고 있다.

지금까지의 양측 입장은 명확하다. ‘경제 제재 해제’와 ‘핵 의무 준수’를 놓고 서로 먼저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견해 차이와 흡사한 구조다. 그럼에도 이번 협상은 나름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지난 6일 회의에서는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와 이란의 후속 조치를 검토할 2개 실무그룹 구성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환영할 만한 유용한 조치”라고 평가했고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도 “참가국들과의 대화가 건설적이었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여전히 걸림돌도 적잖다. 당장 이란은 경제 제재가 한꺼번에 해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이 제시한 우라늄 20% 농축 중단과 10억 달러 규모의 동결 자산 해제 카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이란 정부는 미국이 단계적 협상 타결을 통해 이란의 핵 활동을 기존의 핵합의보다 더욱 강력하게 옥죄려 한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은 협상의 신속한 진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EU 고위 관리는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기한을 5월 말까지로 연장한 만큼 그때까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6월 이란 대선을 앞두고 이번 협상에서 가시적인 결과가 도출되지 못할 경우 자칫 강경한 반미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럴 경우 이란 핵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우려다.

당초 이란 핵합의는 2015년 타결됐지만 3년 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외교적 실패’라고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에 맞서 이란도 이듬해 5월부터 단계적으로 핵합의 의무를 축소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폐회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폐회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북한 핵 문제 차이점 적잖아=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이달 중 최종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다. 대북 정책이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북핵 해법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금까지 대북 제재에 무게를 둔 채 외교도 준비돼 있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에 더해 최근엔 북한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최종판에 제재 유지와 인권 이슈 등을 포함시킬 경우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더욱 커질 것이란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 실험을 재개하는 등 공세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만큼 북핵이 이란 핵 문제보다는 훨씬 복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이란을 향해서는 제재 완화를 협상 카드로 내놓고 있고 이란도 제한적이지만 핵 사찰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핵과 이란핵 문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이란과의 협상이 북핵보다는 더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핵을 개발 중인 이란과 달리 북한은 이미 핵무기 개발을 완료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뚜렷한 차이점”이라며 “미국에 대한 요구 수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반응도 냉랭하다. 1990년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기를 일컫던 ‘고난의 행군’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나는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수해와 대북 제재에 더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외부 지원이 아닌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을 다시 꺼내든 것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 제재가 조만간 풀리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북한이 당분간 미국과의 핵 협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경우 북·미 대화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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