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사·도잠에 대한 관조와 사색 어린 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31호 21면

 시간의 압력-불멸의 인물 탐구

시간의 압력-불멸의 인물 탐구

시간의 압력
-불멸의 인물 탐구
샤리쥔 지음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자신의 사색을 통해 고전의 인물을 관조하는 글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요즘 나오는 옛 사람에 관한 평전들은, 그 인물과 관련된 역사 기록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충실하게 모아놓는 전기 혹은 자료 모음집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요즘은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사색을 들여다보고, 사색의 기법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사색의 책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독서 시장은 온통 ‘정보’와 ‘정치’ 차지다. 이 시대 서점의 서가는 말초적 이익 혹은 흥미와 감정을 자극하는 책들로 가득하다. 관조와 사색은 천덕꾸러기다. 이런 점에서 신간 『시간의 압력』은 색다르다. 옛 인물에 대한 중국 작가 샤리쥔(夏立君)의 관조적 사색은 유려하고 깊다.

굴원, 조조, 도잠, 이백, 사마천, 이사, 상앙…. 책 표지에 나열된 인물들의 이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시적 정취가 물씬 풍기다 말고 느닷없이 이사와 상앙이라니. 이런 의외성에 책을 집어들었고, 이사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사마천과 이사의 교감에서 글을 풀어나간다. 육체는 거세 당했으나 정신적 거세엔 완강히 맞섰던 사마천이 한때 강성했던 정신을 거세한 뒤 인성의 빛을 잃어버린 이사를 다루며, 도덕적으로 거부했으나 감정적으론 동정했다는 작가의 관점엔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도잠(도연명)의 시는 잘 나가는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그러나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장 먼저 손에 들게 되는 게 도연명이다. 사무치는 가난과 벼슬살이의 곤란 속에서도 고요하고 장엄한 정신의 경지에 올랐던 도잠이 주는 위로를 작가는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작가는 이 사색의 산문으로 ‘루쉰 문학상’ 등 중국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단다. 이를 보면서 중국의 인문 정신이 꽤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