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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4명 배출했는데···마크롱, 본인 모교 폐교하는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유럽 정상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유럽 정상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엘리트의 산실' 역할을 해 온 국립행정학교(ENA)가 내년에 문을 닫는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ENA를 내년까지 폐쇄하고 새로운 기관인 공공서비스연구소(ISP)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발표에 앞서 주재한 화상회의에서 공공서비스연구소는 우수한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하겠지만, 다양성 확보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ENA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ENA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에 행정 엘리트 양성을 위해 설립한 2년제 그랑제콜이다. 그랑제콜은 고급 전문 기술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으로 '대학 위의 대학'으로 불린다. ENA를 비롯해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파리경영대학(HEC Paris), 고등사범학교(ENS Paris), 에콜 폴리테크니크 (EP) 등이 있다.

ENA 학생에게는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신분을 주고 2년간 실무 위주 수업을 마친 후 졸업할 때는 성적에 따라 가고 싶은 정부 부처를 골라서 가게한다.

 프랑스 정·재계 엘리트의 산실 역할을 해 온 국립행정학교(ENA). [AP=연합뉴스]

프랑스 정·재계 엘리트의 산실 역할을 해 온 국립행정학교(ENA). [AP=연합뉴스]

에나크(Enarque)라고 불리는 ENA 동문은 프랑스 정·재계에 깊고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현직인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 프랑수아 올랑드 등 4명의 대통령이 ENA를 졸업했다. 1958년 이후 취임한 프랑스 대통령 8명 중 절반이 동문인 셈이다. 재계에서는 베르나르 라티에르 에어버스 공동 창립자와 장시릴 스피네타 전 에어프랑스-KLM 최고경영자(CEO), 앙리 드카스트르 전 AXA CEO 등을 배출했다.

당초 ENA는 출신과 관계없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상류층을 위한 학교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르본 대학(현 파리 4대학)을 정점으로 하던 프랑스의 학벌 구조가 ‘68혁명’ 이후 대학 평준화로 서열이 사라졌지만 ENA가 또 다른 특권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마지막 졸업생 80명 중 1%만이 노동자 출신 부모를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주로 부유하고 전문직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이라고 전했다.

ENA 폐쇄 논의는 불평등 해소를 촉구한 '노란 조끼' 시위 이후 본격화했다. 당초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산발적 도심 시위에서 비롯됐지만 마크롱 정부의 정책이 부유층만 대변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가세하며 전국적 시위로 확대됐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 4월 25일 대국민 담화 통해 소득세 인하와 자신의 모교인 ENA 폐지 구상 등을 내놓으며 민심을 달랬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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