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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 끝나는데 재취업 안 돼 생계 막막…중증 산재 환자 자살 많다

중앙일보

입력

여모씨는 경기도 안산시 소재 자동차 부품 회사에 생산직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2001년 어깨와 등뼈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찾아왔다. 근로복지공단에선 근무 중 근골격계 질환을 얻은 것으로 판정했다. 치료를 받았지만 허리마저 끊어질 듯 아파오는 등 증상은 악화했다. 그는 요양 만기(2004년 6월)가 지난 같은 해 10월 21일 근로복지공단에 재요양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판정이 나지 않았다. 여씨는 이때부터 주위사람들에게 "이렇게 아파서 살면 뭐하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잠을 못 이뤄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11월 4일 부인과 아들(4)을 남겨놓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은 "가장으로서 직장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던 데 대해 절망했다"고 전했다. 이후 부인마저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한 가족이 가장의 산재로 파탄이 난 셈이다.

이렇게 산재 판정을 받은 근로자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영주(열린우리당)의원이 근로복지공단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1년부터 올해 6월까지 96명의 산재근로자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 달 평균 2명꼴이다.

요양 중에 목숨을 끊은 근로자가 65명이었고, 요양 기간이 끝난 뒤 9명, 산재 승인을 기다리다 22명이 자살했다. 요양 도중에 숨진 근로자 중 51%인 33명은 요양 종결일을 1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65명 중 40명은 요양 기간 중 심리치료를 한 차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은 "요양 종결일은 다가오는데 생계는 막막하고, 몸도 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좌절감과 불안감이 겹치면서 결국 자살이란 막다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환자의 자살을 막기 위해 2001년 산재재활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55명이던 재활상담사를 2003년까지 208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재활상담사는 147명에 불과하다. "상담사의 신분 불안(비정규직) 등으로 잦은 이직이 발생하는 등 운영상의 문제로 충원이 지연됐다"는 것이 공단 측의 설명이다.

산재 환자의 고용을 확대하고 직장 복귀를 돕기 위해 책정된 직장복귀지원금의 집행률도 낮다. 지난해에는 32억3000만원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목표액의 9.7%인 3억1400만원만 집행됐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산재 환자의 직업복귀율도 저조하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재 장애 판정을 받은 근로자 11만6646명 가운데 취업을 한 사람은 41%인 4만7841명에 불과하다. 산재 장해인 10명 중 6명은 취업전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원직에 복귀한 경우는 27.4%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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