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거 내가 진작…”집에서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2021.04.09 13:00

업데이트 2021.04.09 15:41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96)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를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날씨를 들으며 무엇을 입을까 생각하고 뉴스를 들으며 하루를 준비하죠. 매일 라디오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귀에 익숙해지는 광고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흘려 듣다 몇몇 광고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의식되기 시작했죠.

그중 하나는 복사용지에 관한 광고입니다. 남녀의 대화를 통해 복사기에 종이가 자꾸 걸리는 상황이 생기자 직장상사로 보이는 남자가 말합니다.

“거, 내가 진작 OO으로 바꾸랬더니!”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대화가 반복되면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상대의 말이 비난의 대화, 나를 향한 공격이라 여겨지면 자기방어로 응대하게 된다. [사진 unsplash]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대화가 반복되면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상대의 말이 비난의 대화, 나를 향한 공격이라 여겨지면 자기방어로 응대하게 된다. [사진 unsplash]

다음은 한 보험회사의 광고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보험을 알아보기로 한 모양입니다. 귀가한 남편에게 아내가 묻죠. “보험 알아봤어?” 남편이 알아보지 못했음을 확인한 아내는 말합니다. “으이구, 그럴 줄 알고 내가 알아봤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흔히 나눌 수 있는 대화입니다. 매 순간 문제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러한 대화들은 ‘너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사람이’, ‘당신이 항상 그렇지 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표면적인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말투, 어조 등을 통해 그대로 전달됩니다. 상대를 향한 비난이나 비교, 무시의 표현인 셈이죠.

어쩌다 한 번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평소 긍정적인 관계, 건강한 관계라면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하더라도 ‘혹시 내가 어떻게 말을 했을까’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큰 불편함으로 여겨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말을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이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구나’하고 여깁니다.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대하는 대화가 반복되면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이 나를 향한 비난이나 공격이라 여겨지면 자기방어로 응대하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언제 그랬어”, “그래서 어쩌라고” 혹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등등으로 이어지게 되죠.

비난과 자기방어의 대화는 어느 순간 서로의 경멸로 이어져 갑니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배운 게 없으니 이 모양이지!”, “뭘 알아들어야 말을 하지”….

그리고 이런 대화의 끝은 회피와 무시, 단절 등 관계의 담쌓기로 이어집니다. 얘기하는데 귀를 틀어막기, 말없이 그냥 나가 버리기, 상대가 얘기하는데 텔레비전 소리 키우기 등의 행동으로 나타나죠.

대화 속 내가 쓰는 단어들, 말의 어조, 말투 등은 내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진 unsplash]

대화 속 내가 쓰는 단어들, 말의 어조, 말투 등은 내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진 unsplash]

부정적인 대화의 패턴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진 않습니다. 광고 속 대화처럼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주고받던 말이 의식적으로 다가오면서 시작됩니다. 대화 속 단어, 말의 어조, 말투 등은 내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대한 감사함은 그 시선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이지 않은 ‘무언 가족’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말하는 사람은 대화의 첫마디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 그 말을 받는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방어하지 않도록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 내가 진작…”
“내가 당신 그럴 줄 알았다!”

혹시 우리 가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은 아닐까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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